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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푸치니 - 투란도트

minjpm 2010. 2. 16.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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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의 오페라를 듣고 있으면 그가 20세기 작곡가라는 사실을 얼른 깨닫기 어렵습니다.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같은 그의 대표작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멜로디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900년을 전후한 이 작품들과는 달리, 1926년에 초연된 푸치니의 유작 [투란도트]는 과감한 음악적 도약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을 작곡하면서 “이제까지의 내 오페라들은 다 버려도 좋다.”라고 말할 정도로 푸치니는 그의 [투란도트]에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no 아티스트/연주  
1 공주는 잠 못 이루고 Nessun dorma / 벤 헤프너[테너] 듣기
2 울지마라, 류 Non piangere, Liu / 벤 헤프너[테너] 듣기
3 옛날 이 황궁에서 In quest regina / 에바 마르톤[소프라노] 듣기
4 처음 흘려보는 눈물 Del primo pianto / 에바 마르톤[소프라노] 듣기

2월 28일까지 무료로 전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공주가 던진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중국 베이징의 황궁. 아득히 높은 계단 위에 ‘투란도트(Turandot)’라는 해괴한 이름의 공주가 서 있습니다(‘투란’은 중앙아시아의 지역 이름이고, ‘도트’는 ‘딸’이라는 뜻입니다. ‘투란의 딸’이라는 이름이죠). 수수께끼 세 개를 맞추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데도, 도처에서 숱한 외국 왕자들이 투란도트에게 청혼을 하러 찾아왔다가 다들 한 문제도 맞추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갑니다. 오늘은 전쟁에 패해 나라를 잃은 칼라프라는 이방의 왕자가 이 냉혹한 공주에게 한눈에 반해 목숨을 겁니다. 투란도트는 새로운 도전자를 맞이해 계단 꼭대기에 서서 평소와 다름없는 오만한 표정으로 출제를 하지요. “어두운 밤에 유령처럼 날아다니며 사람들 마음을 들쑤셔 놓고는, 아침이면 사라졌다가 밤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이 괴상하고 비논리적인 질문에 칼라프는 놀랍게도 정답을 말합니다. “희망!(La speranza!)” 선문선답 혹은 ‘기 싸움’이라고 할까요?

 

 

 

중국의 광대한 영토를 사철 꽁꽁 얼게 만드는 ‘히스테릭 얼음공주’ 투란도트는 처음으로 한 문제를 맞춘 남자를 보고 너무나 놀라고 초조해져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합니다. 살벌한 독신 여왕 대신 평범한 남자의 통치를 받고 싶은 보수적인 베이징 시민들은 한 문제를 푼 칼라프에게 환호합니다. ‘시작이 반이다. 수수께끼 하나를 풀 수 있다면 세 문제를 못 풀 이유가 없다.’ 다들 이런 희망을 품고 다음 퀴즈를 기다리지요. “불꽃처럼 타오르지만 불꽃은 아니다. 그대가 패배할 때는 차가워지고 승리를 꿈꿀 때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 목소리는 희미하지만 그대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방인 왕자의 입에서는 두 번째 정답이 나옵니다. “그것은 피!(Il sangue!)"


대체 어느 나라 백성인지, 군중 가운데 그 누구도 자기 나라 공주인 투란도트를 응원하지 않습니다. 모두 이방인 왕자에게만 미친 듯이 열광합니다. 이제 투란도트는 이 건방진 이방인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보려고 계단 맨 아래까지 내려와 그를 정면으로 쏘아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제를 던집니다.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 그러나 그대가 뜨겁게 타오를수록 더욱 차갑게 어는 얼음... 그것이 그대를 종으로 삼으면 그대는 제왕이 되지. 그건 대체 뭘까?” 각본상 칼라프 왕자는 꽤 오래 고민합니다. 속이 바짝 타들어가는 베이징 시민들은 칼라프에게 힘을 내라고 외치고, 마침내 칼라프는 세 번째 정답을 말합니다. “투란도트!(Turandot!)"


위의 수수께끼 장면은 [투란도트]에서 극의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주인공 남녀가 엄청난 긴장감을 조성하며 고도의 심리전을 펼치는 2막의 이 장면에 앞서, 투란도트는 ‘이 황궁에서 In questa reggia’라는 첫 아리아로 자신이 왜 남자들을 그토록 혐오하게 되었는가를 밝힙니다. “누구도 꺾지 못할 긍지와 확신으로 엄격하게 나라를 다스렸던” 자신의 할머니 로우링 공주가 타타르 인의 침략 때 칼라프같은 이방인 사내에게 겁탈 당하고 죽었기 때문에, 그 할머니의 원한을 풀기 위해 자신은 청혼자들을 모두 죽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 음악의 멜로디와 중국적 분위기를 살려낸 오페라


이 ‘투란도트’ 소재를 처음 작품화한 사람은 18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극작가 카를로 고치였습니다. 그의 [투란도트]는 이탈리아의 전통 희극 코메디아 델 아르테 형식을 따른 작품으로, 왕자는 안하무인이고 공주는 제멋대로인데다 잔인하기까지 한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일 극작가 프리드리히 쉴러가 개작한 [투란도트](1801)에서는 쉴러의 미적 이상(理想)에 따라 왕자는 진지한 사랑으로 기꺼이 공주에게 승복하고, 의무에 충실하기 위해 사랑을 거부하던 공주가 차츰 사랑에 눈 떠가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 쉴러 작품의 이탈리아어 번역판을 읽고 감동 받은 푸치니는 대본작가들과 함께 이 작품을 다시 각색해 오페라 [투란도트]를 만들었습니다. 1920년 런던 여행 때 알게 된 중국 음악들을 참고로 푸치니는 이 작품에서 중국 멜로디를 일곱 번 사용했고, 중국제 뮤직박스(오르골)로 ‘황제찬가’를 듣고 그 멜로디도 작품에 유용하게 썼답니다. 5음계 및 공(Gong), 탐탐, 종, 실로폰 등의 악기를 이용해 중국적 분위기를 살려낸 것도 작품의 인기에 일조했습니다.

 

 

 

투란도트는 [라 보엠]의 미미나 토스카, 나비부인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오페라에서는 투란도트 대신 또 하나의 여주인공이 푸치니의 전형인 ‘희생적 여인상’을 보여줍니다. 나라를 잃고 구걸을 하며 떠도는 눈먼 왕 티무르를 극진히 돌보는 노예 류(Liu)입니다. 베이징의 군중 속에서 티무르의 아들인 칼라프 왕자와 마주쳤을 때 류는 “어느날 궁전에서 왕자님의 단 한 번 미소에 반한” 자신의 절절한 사랑을 고백합니다(‘왕자님, 들어보세요 Signore, ascolta’). 류는 사랑을 모르는 냉혹한 투란도트에게 ‘보상을 원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주려고 나중에는 목숨까지 바칩니다. 이런 비극은 수수께끼를 통과한 칼라프가 만용을 부려 투란도트에게 자기 이름을 맞춰보라는 문제를 내놓고 그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호기롭게 부르면서 시작됩니다. 어떻게든 결혼을 피하려는 투란도트는 필사적으로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내려고 류와 티무르를 고문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류가 왕자를 위해 자결한 것입니다.


푸치니는 [투란도트]에서 의욕적으로 새로운 음악 형식에 도전했지만, 후두암 수술 후유증으로 류가 죽는 부분까지만 작곡을 한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류의 희생을 딛고 칼라프가 마침내 투란도트의 사랑을 얻게 되는 해피엔딩은 푸치니의 절친한 친구였던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감독 하에 푸치니의 제자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했습니다. 마침내 이 작품이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첫날 저녁, 토스카니니는 ‘류의 죽음’까지만 연주한 뒤 “푸치니 선생님은 여기까지 작곡하고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며 숙연하게 지휘봉을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투란도트-칼라프-류 순)

[음반] 비르기트 닐손, 프랑코 코렐리, 레나타 스코토 등, 로마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프란체스코 몰리나리 프라델리 지휘, 1965년 녹음(EMI)


[음반] 존 서덜랜드, 루치아노 파바로티, 몽세라 카바예 등,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존 올디스 합창단, 주빈 메타 지휘, 1972년 녹음(Decca)


[DVD] 에바 마르톤, 플라시도 도밍고, 레오나 미첼 등,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제임스 레바인 지휘,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 1988년 공연 실황(DG)


[DVD] 가브리엘레 슈나우트, 요한 보타, 크리스티나 가야르도 도마 등,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및 빈 국립합창단, 발레리 게르기에프 지휘, 데이비드 폰트니 연출, 2002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TDK)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