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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에서 후기 낭만파 작곡가라고 하면 한 마디로 ‘바그너의 후예들’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악극(혹은 오페라)이나 교향곡, 교향시 등 규모가 큰 작품에 주력했다. 앞서 <오늘의 클래식>에서 소개했던 구스타프 말러(교향곡)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교향시, 악극)가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독일-오스트리아 교향곡 전통에서 말러 못지않게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후기 낭만파 작곡가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요제프 안톤 브루크너(1824~96)가 바로 그 사람이다. 사실 브루크너는 음악만큼이나 사람 그 자체도 많은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인물이지만(평생 독신이었고, 대단히 비사교적이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순진한데다 독특한 강박증까지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여기서는 그런 면까지 다룰 여유가 없다. 따라서 [교향곡 4번]이 브루크너의 음악 세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대강 살펴보고, 구체적으로 곡 해설을 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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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악장 Bewegt, nicht zu schnell / 쿠르트 마주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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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악장 Andante quasi allegrett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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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악장 Scherzo. Bewegt, Trio, Nicht zu schn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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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악장 Finale. Bewegt, doch nicht zu schn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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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까지 무료로 전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 |
브루크너만의 어법이 확립된 4번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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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의 [교향곡 4번]은 (이른바 [습작 교향곡]과 [교향곡 0번]까지 포함해서) 작곡가의 여섯 번째 교향곡이면서 장조로 되어 있는 최초의 교향곡이다. 이 작품은 훗날 브루크너 교향곡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알려지게 되는 몇 가지 특성을 최초로 드러내고 있어, 브루크너만의 어법이 확립된 교향곡으로 일컬어진다.
예를 들어 ‘브루크너 개시’라고 불리는, 1악장 첫머리에서 현악기군이 연주하는 신비한 트레몰로나 같은 1악장 1주제부의 ‘2분 음표+셋잇단음표’ 리듬(‘브루크너 리듬’), 이른바 ‘오르간 사운드’라 불리는, 금관 합주가 자아내는 장중하고 힘찬 수직적 화음 등이 그런 특징들이다.
그러나 물론 이 곡은 그 자체만의 개성도 충분히 갖고 있다. 1악장 주제가 4악장에도 등장함으로써 전체적인 통일성을 살리고 있으며(이런 경향은 [교향곡 5번]에서 한층 강화된다), 대부분의 브루크너 교향곡이 종교적인 승화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데 비해 이 곡은 자연친화적인 면모가 더 두드러진다(1악장 2주제나 3악장의 스케르초 섹션을 들어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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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 교향곡의 복잡한 버전 문제
거의 모든 브루크너 교향곡에 공통되면서 다른 작곡가의 경우에는 거의 찾을 수 없는 특징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버전’ 문제이다. (오래 전에 출간된 음악 서적에는 일본식으로 ‘판본’이라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곡 자체와는 큰 상관이 없는 얘기이지만,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처음 소개하는 자리이니만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소심했을 뿐 아니라 자기 작품에 대해 병적일 정도로 회의적이었던 브루크너는 한 번 작품을 완성한 다음에 스스로의 판단이나 지인의 권유에 의해 개정하는 일이 잦았는데, 이런 개정이 꼭 한 차례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개정판조차도 지휘자에 의해 마음대로 변경, 생략되어 연주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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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 연주사의 초창기에는 작곡가의 지인들이 자의적으로 편집한 버전(뢰베 판이나 샬크 판 등)이 주로 연주되었지만, 작곡가 사후 로베르트 하스가 총책임을 맡아 편찬한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악보는 이전의 자의적인 가필이나 삭제를 없애고 브루크너 본연의 음악을 살려내고자 한 의미있는 작업이었다. 하스의 후임이 된 레오폴트 노바크 역시 전임자와 다른 시각에서 독자적인 편집 작업을 거친 교향곡 전곡 악보를 내놓았는데, 전자를 흔히 ‘하스 판’, 후자를 ‘노바크 판’이라 한다. 양자가 큰 차이는 없지만, 대체로 하스 판이 수식이 많고 아름다운 악상을 많이 살린 반면 노바크 판은 간결하고 전체적인 통일성을 더 잘 살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노바크 판의 경우 브루크너가 개정 작업을 벌인 각 시기마다 편집판을 따로 내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므로 문제는 대단히 복잡해진다([교향곡 4번]의 경우 1874 노바크 판, 1878/80 노바크 판이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기는 해도, 각 버전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경우는 많지 않으므로 버전보다는 지휘자의 해석을 기준으로 선호하는 녹음을 고르는 편이 더 낫다. 다만 아래에서 설명하겠지만 1874년판만은 이후 버전들과 꽤 많이 다르므로 주의를 요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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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크너는 1874년에 [교향곡 2번]의 작곡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교향곡 4번] 작곡에 착수해 거의 1년에 걸쳐 완성했는데, 이를 ‘1874년판’이라 부른다. 이 버전은 우리가 오늘날 ‘브루크너 4번’이라 알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이며, 특히 스케르초는 완전히 다른 곡이다. 초고를 빈 필에 보여준 뒤 싸늘한 반응에 실망한 브루크너는 1878년에 다시 개정에 착수해 3악장은 새로 쓰고 나머지 악장들도 꽤 많이 수정한다. 다만 4악장은 초판의 모습이 꽤 남아 있는데, 이를 ‘민속 축제 피날레’(Volkfest Finale)라고 부른다. 작곡가는 1881년 2월 20일 전곡 초연을 위해 악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1880년 판) 4악장을 전면 교체하게 되고, 이 4악장이 오늘날 우리가 듣고 있는 형태이다. 이후에도 몇 번의 작은 수정이 더해지는데, 1881년 12월 10일 2차 연주회를 위해 약간의 수정을 하고 이는 하스 판에 반영되어 있다. 오늘날 하스 판보다 더 많이 선택되는 노바크 판에는 1886년 뉴욕에서 출판하는 과정에서 미세한 수정이 더해져 있다. 아래의 각 악장 설명은 1878/80 노바크 판에 따른 것이다.
1악장 - 약동하듯이, 너무 빠르지 않게 E플랫장조 2/2박자. 소나타 형식치고는 이채롭게도 세 개의 주요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현의 신비로운 트레몰로 사이로 호른이 서서히 떠오르듯 연주하고, 목관이 이를 받아 연주한 뒤 웅대한 금관 합주로 나아간다. 이 금관 합주가 1주제부로, 그 이전까지는 서주에 해당한다. 작곡가 자신이 언급했듯이 이 서주 부분은 동이 터오는 중세의 새벽 같은 느낌을 준다. 반음계적이기도 하고 바로크적이기도 한 제2주제와 금관 팡파르의 3주제가 이어지면서 웅대하고도 신비롭게 악상이 고조되어 나간다.
2악장 - 안단테 콰지 알레그레토 C단조 4/4박자. 악장 지시는 굳이 풀어 쓰자면 ‘알레그레토에 가까운 안단테로’라는 뜻이다. 전원적인 느낌의 느린 악장이다. 처음 들을 때는 이렇다 할 매력이 없을 수도 있으나 들으면 들을수록 풍요로운 선율미가 느껴지는 악장이다. | |
3악장 - 약동하듯이 스케르초 섹션은 B플랫장조 2/4박자이다. ‘사냥의 스케르초’라는 별명도 있는데, 이것은 현의 트레몰로에 이끌려 등장하는 호른 주제가 사냥 나팔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브루크너의 모든 교향곡 가운데서도 리듬이나 악상 면에서 대단히 독특하고 매력적인 대목이다. 트리오는 3/4박자이고 G플랫장조이다. ‘너무 빠르지 않게, 어떤 상황에서도 질질 끌지 말 것’으로 지시되어 있으며, 한가로운 민속춤의 느낌을 준다. 다시 스케르초 섹션으로 되돌아가 끝난다.
4악장 - 약동하듯이, 그러나 너무 빠르지 않게 E플랫장조, 2/2박자. 강건하고 장쾌한 피날레로, 위압적인 금관 총주 사이사이에 폴카 선율이 등장해 긴장을 늦춰주고 있다. 브루크너 교향곡의 오르간적인 성격(브루크너는 오르간 주자 출신)이 십분 발휘된 악장으로, 마지막에는 1악장 서주 주제를 회상함으로써 전체적인 통일성도 기하고 있다.
비록 ‘낭만적’이라는 표제는 작곡가 자신이 붙인 것이긴 하지만, 이 표제 자체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끌어내려 굳이 애쓸 필요는 없다. 말러와 브루크너 연주로 유명한 음악학자 콘스탄틴 플로로스는 이 곡에 대해 “엄청난 광휘로움과 화려함이 특징”이라면서도 “완전한 표제 교향곡으로 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작곡가 자신이 남긴 일부 표제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곡은 근본적으로 절대음악이며, 바로 그렇기에 오히려 더 풍부한 상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자, 눈을 감고, 아니면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의 풍경화라도 보면서 음악에 귀를 기울여 보자. 산과 바위에 메아리치며 울려 퍼지는 대자연의 웅혼한 숨소리에…….
추천음반
다른 곡의 경우도 그렇겠지만, 이 곡의 녹음 가운데 추천음반을 넷만 고른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시도이다. 그럼에도 굳이 고르자면 일단 뵘/빈 필의 유명한 1973년 녹음(Decca)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강고한 응집력으로 시종 준엄함을 유지하면서도 유려함 역시 잃지 않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템포와 표현에 과장이 전혀 없이 자연스럽다. 첼리비다케/뮌헨 필하모닉의 1988년 녹음(EMI)은 매우 느린 템포로 진행하는 가운데 악상을 차곡차곡 쌓아올려 장대하게 전개하며, 특히 4악장의 극적이고 풍요로운 진행이 인상적이다. 아바도/빈 필의 1990년 녹음(DG)은 다른 지휘자의 녹음에서는 듣기 힘든 부선율을 최대한 이끌어내 아름답게 꾸며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며,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녹음(Denon)은 악단 특유의 중후하고 깊이 있는 울림을 잘 활용해 진정으로 오스트리아의 숲 한가운데 온 느낌을 준다. 특히 전반 악장의 신비롭고 고적한 느낌을 이처럼 선명하게 전달하는 녹음은 거의 없다. 1874년판에 관심이 있다면 난삽한 악상을 놀라울 정도로 명석하게 정리한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브루크너 린츠 오케스트라의 2003년 녹음(Arte Nova)도 들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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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황진규 / 음악 칼럼니스트
- 클래식 전문지 <객석>, <그라모폰 코리아>, <스트라드>, <인터내셔널 피아노>, <콰이어 앤 오르간>, <코다>, <라 무지카> 등에 리뷰와 평론, 번역을 기고해 온 음악 칼럼니스트이다. 말러, 브루크너, 쇼스타코비치, 닐센의 음악을 가장 좋아하며, 지휘자 귄터 반트를 존경한다.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20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