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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베르디 - 레골레토

minjpm 2010. 3. 31. 09:41

 

 

원문에 들어있는 음악을 들으시려면, 본문 맨 아래 있는 원문가기 링크로 가셔서 들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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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이런 노래 아시죠? 원래 이탈리아어 가사에서는 ‘깃털’이었는데, 우리말로 번역할 때 ‘갈대’가 되었네요. 이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이라는 아리아는 아주 가볍고 명랑하게 들리지만, 이 노래가 들어있는 오페라 [리골레토]는 베르디의 여러 걸작 오페라 가운데서도 가장 사회비판적 성격이 강한 작품입니다.

   

no 아티스트/연주  
1 이 여자나, 저 여자나 Questa o Quella / 알프레도 크라우스 [테너] 듣기
2 그리운 그 이름 Caro nome / 안나 모포 [소프라노] 듣기
3 여자의 마음 La donna e mobile / 알프레도 크라우스 [테너] 듣기
4 저 하늘나라에서 Lassu’in cielo / 안나 모포 [소프라노], 로버트 메릴 [바리톤] 듣기

4월 8일까지 전곡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16세기 프랑스 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와 그의 궁정 광대였던 트리불레를 주인공으로 삼아 권력자의 부도덕성과 횡포를 고발한 원작 드라마 [왕의 환락 Le Roi s'amuse]은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 의 희곡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군주와 귀족들이 벌 받을 위험 없이 온갖 방탕하고 못된 짓을 저지르는 신분사회 시스템에 대한 도발적인 비판이었죠. 1832년 프랑스 초연 당일, 곱추 광대가 왕의 암살을 계획했다는 전복적인 설정을 두고 귀족과 평민 관객의 격한 충돌을 불러온 이 연극은, 그 후 오랜 세월 상연이 금지되었답니다. 베르디는 위고의 희곡을 읽고 흥분한 나머지 이 작품을 꼭 오페라로 만들기로 작정하고는,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에게 대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는군요.

 

만토바 공작의 궁정광대 리골레토는 젊은 공작의 호색적인 성격을 부추겨 궁정귀족들의 부인이나 딸을 농락하게 하면서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숨겨두고 곱게 기르던 자신의 딸마저 공작이 유혹해 겁탈하자 분노한 그는 자객을 시켜 공작을 죽이려 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리골레토의 딸 질다는 사랑하는 공작을 살리기 위해 자객의 칼에 대신 뛰어들고, 리골레토는 자루에 든 공작의 시신을 강에 버리려다가 그것이 공작이 아닌 자기 딸임을 알게 됩니다. 농락당한 딸의 명예를 위해 싸우다 리골레토에게 조롱을 당한 귀족이 그에게 퍼부은 저주가 실현된 것입니다.


 

 

 

검열 때문에 제목과 주인공이 달라진 오페라


그러나 오페라 무대 위에서 왕의 암살을 보여주는 일은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불가능했습니다. 원작에서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대본가 피아베가 미리 다 삭제했는데도, 그 무렵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검열 당국은 이 대본에 ‘혁명적’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당연히 공연 허가는 받을 수 없었지요. 고민하던 베르디는 누군가의 조언을 얻어 원작의 무대를 바꾸기로 했습니다. 프랑스 궁정은 이탈리아 만토바 궁정으로 둔갑했답니다. 어디선가 대가 끊겨 베르디 시대에는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게 된 이 만토바 공작의 가문이 오페라 무대에 오른 것이죠. 실재하지도 않는 이 공작을 비난하는 일에 대해서는 검열관들도 별 말이 없었습니다. 베르디는 오페라의 제목도 원래 ‘저주 (La Maledizione)’라고 붙였지만 검열 당국과의 마찰 때문에 결국 주인공의 이름을 따 ‘리골레토’로 바꿔야 했습니다. ‘저주’라는 제목이 훨씬 더 관객을 끌 것 같았지만 말입니다.


위고의 원작에 담긴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베르디의 오페라는 구구절절이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검열 당국의 감시 때문이기도 하고 오페라라는 무대예술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이 오페라의 탁월한 극적 효과는, 긴 대사 없이도 오페라로 사회비판극이 가능함을 충분히 보여줍니다. 자신의 이 희곡이 오페라로 작곡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원작자 빅토르 위고까지도 [리골레토] 3막에 나오는 4중창을 보고 나서는 “내 연극에서도 오페라처럼 네 명이 동시에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효과적일까”라는 말로 감탄을 표했다고 합니다. [리골레토]는 도니체티벨리니의 ‘벨칸토 오페라’(서정적인 선율과 가수의 목소리 기교가 핵심을 이룬 오페라)를 계승했던 베르디의 초기 오페라 끝 부분에 해당하는 작품이면서,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 중기의 3대 걸작’으로 꼽히는 오페라이기도 합니다. 음악적인 면에서 볼 때 실제로 [리골레토]는 벨칸토적 선율미가 넘치는 동시에, 벨칸토 오페라에서 흔히 부족하게 느껴지는 드라마틱한 설득력을 함께 지니고 있거든요.

 

 

 

경박한 테너, 순수한 소프라노, 극적인 바리톤

베르디의 여러 오페라가 그러하듯 [리골레토]에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세 명의 핵심인물이 있습니다. 테너 주인공인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에게 베르디는 경쾌하고 표피적인 음악을 만들어 주었습니다(‘이 여자나 저 여자나 Questa o quella,’ ‘여자의 마음’ 등).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에서 주인공인 ‘돈 조반니’의 노래들이 그러하듯, 공작의 아리아들은 유려하고 매혹적이지만 별 깊이가 없습니다.

 

소프라노 주인공인 10대 처녀 질다의 노래는 세상과 단절되어 새장에 갇혀 사는 듯한 그의 삶에 걸맞게 순수하고 단조롭지만, 공작과의 사랑을 경험하고 난 뒤로 아버지 리골레토와 함께 부르는 2중창은 소녀에서 여인으로 하룻밤새 성숙한 질다의 변모를 음악으로 보여줍니다. 따라서 질다 역의 소프라노는 벨칸토 스타일의 아리아 ‘사랑스런 그 이름 Caro nome’과 격정적이고 극적인 ‘복수의 이중창 Si, vendetta’을 동시에 다 제대로 소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젊고 매력 있는 소프라노와 테너에 가려져 바리톤 주인공 리골레토의 비중이 약해져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 오페라의 타이틀 롤인 리골레토는 이 격정의 드라마를 이끌어나가는 존재인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가장 깊이 있고 에너지 넘치는 가창을 들려주는 배역이기 때문입니다(‘가신들, 이 천벌을 받을 놈들아 Cortigiani, vil razza dannata’).


 

주인공이 곱추라는 장애를 지녔다는 설정 자체가 세상에 대한 그의 분노와 저항을 암시하는데요, 자신을 인간으로 존중해주지 않는 공작과 귀족들을 향해 리골레토는 “내가 사악하다면 그건 다 너희들이 못돼먹어서다”라고 독백합니다. 자신을 배신한 남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질다의 죽음은 사랑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 아닙니다. 질다는 꼭 첫사랑에 눈이 멀어 죽음을 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열어 보이지 않는 아버지, 그리고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에 절망한 나머지, 어른이 되는 문턱에서 삶을 포기했는지도 모릅니다. 젊은 시절에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어야 했던 베르디의 깊은 우울이 이 드라마 속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도 역시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습니다. 다시 ‘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면요, 베르디는 초연 전날까지 테너 가수에게 이 곡을 절대로 사람들 앞에서 부르지 말라고 해놓고 꼭꼭 숨겨두었답니다. 마침내 공연 당일, 무대에서 테너 가수가 이 노래를 부르자 이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반한 관객들은 오페라가 끝난 뒤 다들 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갔고, 이 노래는 다음날 당장 히트곡이 되었습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리골레토-질다-만토바 공작 순)

[음반) 티토 곱비/마리아 칼라스/주세페 디 스테파노 등, 툴리오 세라핀 지휘,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1955년 녹음, Decca

 

[음반] 셰릴 밀른즈/존 서덜랜드/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리처드 보닝 지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암브로시언 오페라 합창단, 1971년 녹음, EMI

 

[DVD] 잉그바르 빅셀/에디타 그루베로바/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리카르도 샤이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장 피에르 포넬 연출, 1983년 영화판, Decca

 

[DVD] 파올로 가바넬리/크리스티네 쉐퍼/마르셀로 알바레스 등, 에드워드 다운즈 지휘,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 1996년 공연 실황, 데이비드 맥비카 연출, BBC-Opus Arte

 

 

 

이용숙 / 음악평론가, 전문번역가
이화여대 독문과 및 대학원 졸업하고 독문과 강사를 역임했다.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문학 및 음악학 수학, 서울대 공연예술학 박사과정 수료했다. 연합뉴스 오페라 전문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2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