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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CLAMP

우주 & 신비로운 과학세계

[스크랩] 소나무 - 언제나 푸른다

minjpm 2009. 11. 26. 11:21

"…소나무는 이파리가 두 개씩 묶어 나는 것이 대부분인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재래종 소나무 육송(陸松)이다. 연년세세(年年歲歲) 우리와 같이 살아온 그 소나무이다. 자리를 잘 잡은 놈은 길길이 자라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은 땅딸보 왜송(矮松)으로 남는다. 그러나 낙락장송이나 왜송이나 다 똑같은 종(種)이다.

 

이와 달리 잎이 짧고 뻣뻣하여 거칠어 보이는 것이 있는데 그 나무의 잎을 따보면 잎이 세 개씩 묶어 나있다. 이 소나무는 리기다소나무로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이며 병해충에 강하다고 하여 일부러 들여와 심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소나무가 있으니, 이파리가 유달리 푸르러 보이고 잎이 통통하고 긴 잣나무이다. 잎을 잘 관찰해보니 한 통에 잎이 다섯 개나 모여 있지 않은가. 5형제가 한 묶음 속에 가지런히 들어 있어서 다른 말로 오엽송(五葉松)이라고 부른다.

 

소나무면 다 소나무인 줄 알았는데 잎부터 이렇게 다르니 이것이 자연의 비밀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알고 보면 우리나라만큼 소나무가 많은 나라도 없다. 예로부터 소나무를 귀하게 여겨 다른 잡목(雜木)을 골라 베어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소나무가 많은 만큼 그 용도도 다양하다. 우리 조상들은 솔방울은 물론이고 마른 솔가지 삭정이와 늙어 떨어진 솔잎은 긁어다 땔감으로 썼고, 밑둥치는 잘라다 패서 주로 군불을 때는 데 썼다. 솔가리 태우는 냄새는 막 볶아낸 커피 냄새 같다고 했던가.


그뿐인가. 옹이진 관솔 가지는 꺾어서 불쏘시개로 썼고, 송홧가루로는 떡을 만들었으며, 속껍질 송기(松肌)를 벗겨 말려 가루 내어 떡이나 밥을 지었고 송진을 껌 대신 씹었다. 더욱이 요새 와선 솔잎이 몸의 피돌기를 원활히 해준다 하여 사람들이 솔잎 즙을 짜서 음료로 만들어 팔기에 이르렀다. 그 물이 달콤하기 그지없으니 이는 설탕과 비슷한 과당이 많이 든 탓이다. 또 솔잎에는 배탈이 났을 때 좋은 타닌(tannin)도 그득 들어 있다…" – <사람과 소나무> 중-


 

 

우리나라 사람과 소나무의 인연은 특별나다

위의 글은 ‘사람과 소나무’란 제목으로, 중학교 2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 8년간 올라갔던 필자의 글의 한 도막이다. 개인적으로 그지없이 영광스러운 일었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우리나라 사람과 소나무의 인연은 특별나다. 위 글에 ‘우리나라에 소나무가 많은 것은 잡목을 베 낸 탓’이란 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기후와 토질에 가장 알맞는 나무 종류는 신갈나무상수리나무 같은 참나무 무리라서 손 안 대고 두면 그것들이 온통 산을 다 뒤덮어버린다. 침엽수인 소나무는 뙤약볕을 받아야 잘 사는 양수(陽樹)이지만 활엽수인 신갈나무는 빛을 적게 받아도 살아가는 음수(陰樹)다. 하여 길찬 음수 그늘에 양수가 가리게 되면 빛이 모자라 죽고 말며 최후의 승리자는 음수림(陰樹林)으로 이를 극상(極相,climax)이라 한다. 그래서 일부러 참나무를 베어내지 않으면 소나무는 배기지 못한다. 그리고 글에서 눈에 좀 선 ‘리기다(rigida) 소나무라는 것이 있는데, 북아메리카 원산이다. 한 때 몹쓸 놈의 ‘솔잎혹파리’가 우리 소나무 육송(陸松)을 못살게 굴었으니 죄다 베어 내고 이것을 대신 갖다 심었다.

 

 

소나무는 왜 1년 내내 푸른가?

또 글에 “솔가리 태우는 냄새는 막 볶아낸 커피 냄새 같다.”라고 했다. 솔가리란 우수수 말라 떨어진 솔잎을 말하고, 겨울이면 매일 뒷산에 올라 솔개비는 물론이고 대나무갈고리로 빡빡 긁어 한 짐씩 해다 날랐으니 그것 없었으면 우린 벌써 얼어 죽었다. 아슴아슴한 옛일로 소나무가 생명의 은인이로다! 그런데 상록수인 소나무도 잎을 떨어뜨릴까? 늦가을 산에 들면 마침내 초록빛을 잃어 누렇게 물든 조락(凋落)한 솔잎들이 가득 붙어 있는 것을 본다. 제행무상,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잘 보면 잎넓은나무(활엽수)들은 가을 오면 그해 봄에 만들어진 잎들이 이내 떨어지는데, 소나무 같은 상록수는 올 것은 겨우내 그대로 달라붙어 있고 지난해 생긴 두 살짜리들이 떨어진다. 소나무나 다른 상록수들은 그래서 1년 내내 푸르디푸른 것이렷다!

 

 

 

초근목피, 그 목피의 실체, 송기

‘송기(松肌)’라는 단어는 정말 입에 담기도 싫다. 이른 봄 소나무 우듬지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 곧게 뻗은 지난해 줄기를 낫으로 툭툭 잘라 겉껍질을 슬슬 벗긴 다음에 입에 물고는 하모니카 불듯 양손으로 잡아당기니 속껍질이 벗겨지면서 단물이 툭툭 튄다. 그것을 긁어모아 소쿠리에 담아 말린 것이 송기요, 콩콩 찧어 가루를 내어 밥에 얹어 먹는다. 많이 먹고 나면 타닌 탓에 변비로 애를 먹는다. 잔디나 삘기 뿌리가 초근(草根)이라면 떫디떫은 송기는 목피(木皮)다. 굶음을 견디는 고래 힘줄 같은 DNA를 지닌 우리였기에 그렇게 초근목피로 허기를 때우면서 고난의 세월을 이겨냈다.

 

 

거목 밑에 잔솔 못 자란다?

 


“거목 밑에 잔솔 못 자란다.”는 말은 “잘 나가는 아버지 좋은 자식 두기 걸렀다.”는 것과 통한다. 아무튼 숲 속에 빽빽이 들어찬 송림 아래에는 듬성듬성 어린나무 몇 그루를 제하고 도통 딴 식물이 없고, 그렇게 많은 솔 씨가 떨어졌으나 애솔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가 뿌리에서 생장/발아억제물질을 뿌려놨기에 그렇다.

 

어느 식물이나 뿌리와 잎줄기에서 나름대로 다른 종(種)에 해로운 억제물질을 분비하니 이것을 타감작용(他感作用,allelopathy)이라 하고, 소나무 뿌리는 갈로타닌(gallotannin)이라는 다른 식물을 못 자라게 하는 타감물질(allelopathic substance) 뿌려 놨다.

 

그런데 모수(母樹)를 베어버리면 발아억제물질이 없어져 버리기도 했지만, 여태껏 어미나무 그늘에 있던 솔 종자들이 땡볕을 받아 대뜸 떼거리로 거침없이 움을 틔운다(솔은 강한 햇살을 받아야 발아함). 노거수(老巨樹)는 저렇게 의연하고 넉넉한 품새를 풍기는데 어이하여 사람은 늙고 낡을수록 추레한 몰골을 하는 것일까?

 

 

거친 땅의 소나무는 솔방울이 많다

그리고 푸서리(거친 땅)에 자란 소나무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얼핏 또래 나무 중에 어떤 녀석은 솔방울을 주체할 수 없이 잔뜩 매달고 있다. 어쩐지 녀석 꼬락서니가 좀 추레한 것이 너저분하다. 생육조건이 좋지 못하여 머잖아 끝내 삶을 마감해야 하는 터라 서둘러 새끼를 봐야 하기에 그 많은 송과를 울러 메고 있다. 사람도 전쟁이 나거나 하면 자식을 많이 낳지 않던가.

 

소나무도 다치면 피를 흘린다. 송진이 굳어 상처부위를 막으며, 병원균이 세포벽에 달라붙으면 상처부위의 세포벽이 변성하면서 딱딱한 리그닌(lignin,木質)물질을 쌓을뿐더러 파이토알렉신(phytoalexin)과 같은 항생물질(antibiotics)까지 만들어내어 몸을 방어한다. 세한송백(歲寒松柏)이라, 날이 차가워진 뒤에라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꿋꿋함을 안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여 영원하여라!

 

 

 

권오길 /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생물의 죽살이>, <꿈꾸는 달팽이>, <인체 기행> 등이 있다. 한국 간행물 윤리상 저작상(2002), 대학민국 과학 문화상(2008) 등을 수상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1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