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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클래오파트라의 진주 - 진주는 식초에 녹는가?

minjpm 2009. 12. 7. 18:02

야외에 노출되어 있는 대리암(흔히, 대리석이라고도 한다)으로 만든 조각작품이 흉하게 변해 가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은 산성비가 얼마나 무서운 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종종 등장한다. 대리암은 탄산칼슘(CaCO3)이 주성분인 암석으로, 산성비와 반응하여 녹아 내리는 것이다. 탄산칼슘으로 이루어진 사물들은 대리암 이외에도 계란 껍질, 조개 껍질, 분필, 진주 등 매우 다양하다.  클레오파트라가 진주를 식초에 타서 마셨다는 일화도 대리암이 산성 용액에서 녹는 화학반응을 알고 나면 왜 그런 말이 퍼지게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탄산칼슘은 산성 용액에서 물에 녹는 탄산수소칼슘으로 변한다

탄산칼슘을 산성인 식초 용액에 담그면, 탄산칼슘은 물에 잘 녹는탄산수소칼슘(Ca(HCO3)2)으로 변한다. 물질이 특정 용매에 녹는 정도를 용해도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물을 용매로 하는 탄산수소칼슘의 용해도는 탄산칼슘의 용해도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자료에 따르면 탄산칼슘은 실온에서 물 1L에 약 15mg만 녹을 정도로 용해도가 낮다. 그렇지만 탄산수소칼슘은 약 166g 녹으며, 수산화칼슘(Ca(OH)2)은 1.73g 녹는다.  즉, 탄산수소칼슘의 용해도는 탄산칼슘의 용해도보다 약 10,000배 이상 크며, 물에 매우 잘 녹는 물질임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소금이 물 1L에 약 359g 녹는 것과 비교하면, 탄산수소칼슘도 비교적 잘 녹는 물질임을 알 수 있다.

 

탄산수소칼슘은 물 속에서 칼슘이온(Ca2+)과 탄산수소이온(HCO3-)으로 비교적 쉽게 나눠지고, 이런 이온들은 극성 용매인 물에 잘 녹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온들이 물에 녹아 있으면, 마치 순수한 물처럼 투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물에 거의 녹지 않는 탄산칼슘이 물 속에 다량 존재하면, 침전 혹은 부유물처럼 떠다니게 되어 물도 탁해 보이고 마시기가 여간 거북하지 않다.


 

탄산칼슘이 산성용액에서 녹는 과정을 화학의 언어(분자, 이온, 반응물, 생성물 등이 포함된 화학식)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반응식은 이산화탄소가 물에 녹아 산이 형성되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며, 두 번째 반응식은 탄산칼슘이 산 용액에서 녹아 탄산수소칼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기호(↔)는 반응이 조건에 따라서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런 반응을 화학에서는 반응이 '가역적이다'라고 표현을 한다.

  


클레오파트라, 과연 진주를 녹여서 마실 수 있었을까?

이집트의 여왕인 클레오파트라는 당시 지중해의 패자인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를 맞이하게 되었다. 클레오파트라는 멋진 로마 장군을 유혹하고, 이집트의 재력을 과시하고자, 연회에서 흥미로운 사건을 일으킨다.  시종이 가져온 용액이 담긴 잔에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귀에 걸린 큼지막한 진주 귀걸이를 넣었고, 얼마 후에 그 물을 마셨다.  클레오파트라의 배짱에 놀란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렸고, 그 결과 로마의 패권을 정적인 옥타비아누스(후에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에게 넘겨주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화학자의 눈으로 그 광경을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클레오파트라가 진주를 식초에 넣었다면, 진주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산과 반응하여, 탄산수소칼슘으로 바뀌었고, 당연히 수용액에 잘 녹았을 것이다. 식초 잔 안에서 일어난 화학 반응은 앞에서 제시된 두 번째 화학식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결국 반응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마실 수 있는 식초 용액에 포함된 산으로 진주를 탄산수소칼슘으로 변환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또한 여왕의 지위에 걸 맞는 진주 귀걸이에 있는 진주 알맹이가 제법 컸을 것이라고 가정을 해보면, 진주가 녹아 마시기 편한 용액 상태로 되기까지에는 꽤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므로 즉석에서 식초에 녹여 마셨다는 이야기는 꾸며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산성비에 대리암이 녹는 것도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대리암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의 조각상들과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 대리암은 다른 암석에 비해, 색이 아름답고 다루기가 편해서 고대부터 건축 자재로 많이 사용하였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대리암은 진주와 마찬가지로 주성분이 탄산칼슘이다따라서 야외에 설치된 대리암으로 만든 조각 작품이 산성비에 녹아 내리는 것도 클레오파트라가 식초에 진주를 녹이는 것과 같은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 활동으로 인해 공기로 배출된 황 혹은 질소 산화물이 비에 녹으면, 묽은 농도의 황산과 질산 용액으로 바뀌어, 산성비가 된다. 산성비가 건물이나 조각상 표면에 있는 대리암의 탄산칼슘 성분과 반응하여 물에 잘 녹는 성분으로 변하게 되면 대리암의 부식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대로, 탄산칼슘이 침전되는 반응도 실생활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탄산칼슘은 산과 반응하여 쉽게 녹지만 기본적으로 용해도가 낮아서 물에 잘 녹지 않는 물질이다. 수용액에 녹아 있는 탄산수소칼슘은 반응 조건이 맞으면 다시 탄산칼슘으로 가역반응이 진행된다. 즉 탄산칼슘이 형성되어 앙금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수돗물을 끓이는데 오랫동안 사용한 주전자의 열이 직접 닿는 부분, 혹은 가열식 가습기의 히터 코일의 표면에는 흰색의 앙금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현상이 탄산칼슘이 앙금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예이다. 수돗물에 녹아 있는 칼슘이온과 탄산이온이 반응 용기(주전자) 안에서 탄산칼슘으로 결합하여 용기 표면에 석출된 것이다.

 

 

 

물에 잘 녹는 탄산수소칼슘이 형성되도록 하려면 위 반응이 반대 방향으로 진행되도록 유도하면 된다. 물을 담은 주전자에 부엌에 있는 산(H3O+)인 식초를 몇 방울을 떨어뜨려 가열을 하면, 탄산수소칼슘으로 변하는 역 반응이 촉진된다. 그 결과 탄산칼슘을 비교적 쉽게 제거할 수 있다.  이처럼 간단한 화학반응이라도 이해를 하고 나면 우리의 살림살이가 좀 더 편하고 재미있을 수 있다.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를 썼고, <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 번역하였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chemistry/15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