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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광자 - 어디든 자유롭게 동에 번쩍 서에번쩍 광자는 홍길동

minjpm 2009. 11. 30. 18:32

오래 전에 읽은 책 중에 일본의 도모나가 신이치로(朝永 振一郎, 1906~1979)가 쓴 <양자역학적 세계상>이라는 작은 책이 있다. 양자물리학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이 책 속에 있던 광자 재판이라는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생각이 나서, 오늘은 이 책에 나오는 광자 재판 이야기로 양자물리학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코펜하겐 해석을 소개하기 위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쓴 <광자 재판>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도쿄 대학 교수를 지낸 사람으로 1947년에 전자기학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한 양자전자기학 이론을 제시하여 줄리언 슈윙거(Julian Seymour Schwinger, 1918~1994), 리처드 파인만((Richard Phillips Feynman, 1918~1988)과 함께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다. 도모나가는 중간자의 존재를 예측하여 194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1907~1981)에 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다. 도모나가는 후에 물리학을 쉽게 설명하는 <양자역학 1, 2>, <양자역학적 세계상>, <거울 속의 물리학>, <스핀은 돈다>, <정원으로 날아든 새>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도모나가가 쓴 <양자역학적 세계상>의 세 번째 장에는 광자 재판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책은 현재도 번역판이 팔리고 있어 쉽게 서점에서 구입해 볼 수 있는 책이다. 광자 재판에서 재판을 받는 범인은 ‘빛 알갱이’인 광자였다. 광자는 범행을 하기 전 방 밖에 있었다. 그러나 창문이 두 개 나있는 방에서 창문을 통과하여 범행을 저지르고, 창문 반대편 벽에 범행 흔적을 남기고 체포되었다.

 

재판의 핵심은 범인인 광자가 두 창문 중 어느 창문을 통해서 방으로 침입했는가 하는 것이었다. 검사는 광자에게 두 창문 중 어느 창문을 통해서 방으로 침입했는지 물었다. 광자는 두 창문을 모두 통과했다고 주장했다. 검사는 광자의 말도 안 되는 주장에 분개했지만, 변호사는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하나의 광자가 두 개의 창문을 ‘동시에’ 통과할 수 있다

변호사의 변론 요지는 다음과 같다. 광자가 어느 한 곳에서 관측되는 순간 다른 곳에서도 동시에 관측된 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광자는 동시에 두 장소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따라서 창문에 광자가 통과하는지 여부를 감지하는 관측 장치를 설치해 놓으면 광자는 두 창문 중 하나만을 통과하여 방으로 침입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런 감지 장치가 없는 경우에는 광자가 두 창문을 동시에 통과한다. ‘관측하는 동안’에 두 창문 중 하나만을 통과한다는 사실만으로 ‘관측하지 않는 동안’에도 두 창문 중 하나만을 통과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그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두 창문에 감지 장치를 달아 두 창문 중 하나만을 통과하도록 했을 때, 반대편 벽에 나타난 결과와 관측하지 않은 채로 창문을 통과시켰을 때 반대편 벽에 나타난 결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두 창문에 관측 장치를 달아 두거나 경관을 배치시켜 두 창문 중 하나만을 통과하도록 한 실험 결과는 처음에는 두 창문 중 우측 창문만을 열어 놓고 실험을 하고, 다음에는 좌측 창문을 열어 놓고 실험을 한 후 두 결과를 더한 결과와 같다. 두 경우에는 모두 광자가 한 쪽 창문만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런 감시를 하지 않으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따라서 관측하지 않는 경우에는 두 개로 나누어질 수 없는 하나의 광자가 두 창문을 동시에 통과하는 불가사의한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모나가가 광자 재판을 통해 설명하려는 것은 물리량과 관측의 관계이다. 양자물리학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가 측정 행위와 측정된 물리량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리량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양이어서 측정행위나 측정 방법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양이라는 것이 고전 역학에서의 상식이었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만약 측정된 물리량이 측정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면 그것은 측정 방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1962) 는 측정하는 대상의 물리량과 측정하는 동안 측정 행위와 대상 사이의 상호작용을 명확하게 구별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다시 설명하면 측정된 물리량이 어디까지가 대상물의 물리적 성질에 기인한 것이고 어디에서부터가 대상물과 측정행위 사이의 상호작용의 결과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측정행위가 물리량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것은 측정된 물리량에 영향을 주지 않는 측정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측정이라는 동작이 관측할 대상의 상태를 바꾼다

광자가 어느 창문을 통해 방으로 침입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창문에 감지기를 설치하거나 경관을 배치하는 것은 광자의 행동에 영향을 주어 다른 결과를 나타내게 하므로 그런 실험을 통해 얻은 결과로는 관측하지 않는 동안 광자가 어느 창문을 통과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관측 행위가 항상 관측된 물리량에 영향을 준다면 관측하지 않는 동안에 어떤 물리량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실험 자체가 광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직접적인 실험을 통해서는 광자가 어떤 창문을 통과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론적 분석을 통해 광자가 두 창문을 동시에 통과하는 경우에 반대편 벽에 어떤 흔적을 남길 지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계산 결과가 실제 실험 결과와 같다면 우리는 광자가 관측하지 않는 동안에는 두 창문을 동시에 통과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나의 광자가 두 창문 모두를 통과하는 이상한 현상은 광자가 어떤 창문을 통과하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을 하는 즉시 사라진다. 측정하지 않는 동안의 광자의 상태는 두 창문을 통과하는 두 상태의 중첩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측정하는 순간 두 상태의 중첩에서 하나의 상태로 고정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두 창문을 통과하던 광자가 측정에 영향을 받아 하나의 창문만을 통과하는 상태로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코펜하겐 해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경험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런 결론을 틀렸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모나가의 광자재판은 모든 물리량은 관측이 가능할 때만 의미를 가지며, 물리적 대상이 가지는 물리량은 관측과 관계없는 객관적인 값이 아니라 관측 작용의 영향을 받는 값이라는 코펜하겐 해석을 설명하기 위한 이야기이다. 도모나가는 1937부터 1939년까지 코펜하겐 그룹의 일원이었고 코펜하겐 해석의 중요한 부분인 불확정성의 원리를 제안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1976)와 함께 독일에서 연구했었다. 따라서 도모나가는 코펜하겐 해석에 전적으로 동감했으므로 코펜하겐 해석을 설명하는 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슈뢰딩거 고양이와 ERP 역설 : 코펜하겐 학파에 대한 반박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슈뢰딩거아인슈타인은 ‘물리량은 객관적인 양이 아니라 측정행위와의 상호작용의 결과’여서 측정 작용과 분리된 물리량은 존재할 수 없다는 코펜하겐의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오랫동안 의견을 나눈 후 1935년에 슈뢰딩거 고양이의 역설이라는 사고 실험을 제안했다. 같은 해에 아인슈타인은 포돌스키(Boris Podolsky, 1896~1966), 로젠(Nathan Rosen, 1909-1995)과 함께 양자역학에 코펜하겐 해석이 완전하지 않다는 EPR 역설을 제안하기도 했다. 따라서 도모나가의 광자재판이 코펜하겐 해석을 옹호하기 위한 증거를 제시하는 사고실험이라면 슈뢰딩거가 제안한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코펜하겐 해석이 옳지 않다는 증거를 제시하기 위한 사고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변론과 반론을 다 들어 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물리량과 측정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슈뢰딩거가 제안한 고양이 실험을 통한 반론을 들어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 이야기에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곽영직 / 수원대학교 자연대학장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터키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수원대학교 자연대학장으로 있다. 쓴 책으로는 <과학이야기> <자연과학의 역사> <원자보다 작은 세계 이야기> 등이 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1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