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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 신비로운 과학세계

[스크랩] 姓의 모순 - 일부일처제의 모순

minjpm 2009. 12. 7. 18:04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시골 사람들이 서울에 오면 창경원에 제일 가고 싶어했다.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전인 1909년 일본이 우리 창경궁에 동물원을 세운 것은 분명히 아픈 과거였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에서 딱히 갈 곳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나는 시골에서 서울 구경을 오신 어르신들을 모시고 참으로 여러 차례 창경원을 방문했다. 동물행동학자로서의 나의 운명은 이미 그 때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깃털을 보고 싶어하신 어르신들을 위해 공작새 우리 앞에서 온갖 얄궂은 날갯짓을 하던 그 시절에 나는 종종 그곳 철책 안에 앉아 있던 우리 사촌들의 슬픈 눈동자를 하염없이 들여다보곤 했다. 원숭이와 유인원 등 이른바 영장류는 우리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이다. 나는 창경원 철책 안이 아니라 그들이 원래 살던 숲 속에서 그들을 보고 싶었다.

 

 

우리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동물, 영장류

그러다가 내가 정말 그들의 고향에서 그들을 처음 만난 것은 1984년 파나마 운하 한가운데에 떠 있는 바로 콜로라도 섬의 스미스소니언 열대연구소를 찾았을 때였다. 그곳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숲으로 들어선 지 그저 한 시간여 만에 흰얼굴꼬리말이원숭이(white -faced capuchin) 가족과 맞닥뜨렸을 때의 흥분을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 절절이 느낄 수 있다. 얼마 후 나는 도대체 영장류 연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보기 위해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에서 그들을 연구하러 와 있던 백인 여학생을 따라 나섰다. 참으로 허무한 하루였다.

 

 

우선 그들을 찾기도 쉽지 않았지만 애써 찾은 다음 가까이 접근하면 그들은 이내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휙휙 건너뛰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숲 꼭대기에서  거의 수평으로 이동하지만 우리는 험한 지형을 따라 산을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힘들게 따라다녀야 했다. 하루 온종일 따라다니다 해가 질 무렵 터덜터덜 산을 내려오며 나는 그 친구의 관찰 노트에 그 날 하루 종일 기껏 기록한 데이터의 전부가 겨우 두어 줄뿐이란 걸 발견하곤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래도 기왕에 하려던 곤충 연구로 박사 학위를 하고 이담에 정년 보장을 받은 교수가 되면 그 때 영장류 연구를 시작하련다”고.

 

나는 지금 정년이 보장된 교수이다. 그래서 드디어 몇 년 전부터 영장류 연구를 시작했다. 2007년부터 인도네시아 자바의 구눙 할리문—살라크 국립공원(Gunung Halimun-Salak National Park)에서 자바긴팔원숭이(Javan gibbon)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자바긴팔원숭이는 멸종 위기종인데다 그 동안 서양의 영장류학자들도 그리 많이 연구하지 않아 조만간 우리 연구진이 세계 제일의 권위를 확보할 것으로 믿는다. 긴팔원숭이를 연구하게 된 데에는 다분히 우연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전략적으로도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긴팔원숭이는 누군가가 처음에 원숭이라고 잘못 부르긴 했어도 엄연히 꼬리가 없는 유인원이다. 하지만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에 비해 몸집도 많이 작고 행동 유형도 많이 다르다. 그래서 아마 유인권과 원숭이 사이의 진화적 전환을 연구하는 데 좋은 단서를 제공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게다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긴팔원숭이의 종다양성(species diversity)이다. 침팬지는 보노보가 발견되어 두 종이고, 고릴라도 동부고릴라와 서부고릴라로 나뉘어 두 종이지만 오랑우탄은 달랑 한 종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들 대형유인원을 가지고는 이른바 비교연구가 불가능하다. 긴팔원숭이는 현재 12~15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간의 비교연구를 통해 진화의 역사를 재건해볼 수 있어 나는 개인적으로 침팬지나 오랑우탄을 연구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처럼 일부일처제로 사는 자바긴팔원숭이를 연구하다

내가 긴팔원숭이를 연구하기로 맘먹으며 은근히 흥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그들의 번식구조 때문이다. 긴팔원숭이는 대형유인원들과 달리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며 산다. 이는 일단 포유류로서 매우 희귀한 일이며 유인원으로서는 더욱 드문 현상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유인원과 가장 진화적으로 가까운 우리 인간은 사실 표면적으로는 일부일처제를 채택하고 있다. 적어도 현대인의 경우에는 분명히 그렇다. 하지만 전통사회를 둘러보면 우리 인간도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일부다처제의 성향이 다분하다. 그 동안 진화생물학자들은 인간을 서슴없이 일부다처제 동물로 분류해왔다. 그러나 나는 인간에게는 일부일처제의 진화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생물학적 요인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긴팔원숭이를 연구하다 보면 그런 내 생각을 뒷받침해줄 귀한 자료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영장류학이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21세기에 가장 중요해질 연구분야는 단연 인간의 뇌를 탐구하는 분야이다. 뇌과학과 인지과학이 바로 그들인데, 인간의 뇌를 직접 연구하는 데에는 숱한 윤리적 또는 기술적 제약이 따른다. 직접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어려운 연구들이 영장류 연구에서는 상당 부분 가능하다. 또한 영장류의 뇌를 들여다보면 인간 두뇌의 진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웃나라 일본은 영장류학계에서 독보적인 나라이다. 영장류학의 선두국가인 미국, 영국, 독일, 일본 중에서 실제로 자기 땅에 영장류가 살고 있는 유일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원숭이는 온천욕을 즐기고 모래가 묻은 고구마를 물에 씻어먹을 줄 아는 대단히 흥미로운 영장류이다. 그런데 이들과 매우 흡사한 원숭이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지만 충북대학교 박물관에는 그들의 화석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요즘 종종 잠을 설친다. 우리 연구진의 자바긴팔원숭이 연구는 이제 3년도 채 안 됐건만 벌써 논문 거리가 손에 잡힌다. 멸종위기종인데다 과학계가 그들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내년 이 맘 때쯤이면 국제학술지에 우리의 첫 논문이 실릴 것 같다. 그 논문으로 우리가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 동안 영장류의 DNA를 연구한 우리 학자들의 논문은 있었으나 그들의 행동과 생태에 관해서는 그야말로 단군 이래 처음이다. 서울동물원과 에버랜드동물원도 이제 영장류 인지실험을 위한 시설을 갖췄다. 드디어 우리도 세계영장류학계에 명함을 내밀 수 있게 되었다.

 

 

일부일처제의 성향을 퍽 많이 갖춘 인간

동물의 번식 구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일부다처제(polygyny)는 한 수컷이 여러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체제이고, 그 반대는 일처다부제(polyandry)이다. 그리곤 암수가 짝을 이루는 일부일처제(monogamy)가 있다. 인류 집단의 여러 종족의 번식 구조를 조사해보면 일부다처제가 압도적으로 많다. 일처다부제는 정말 귀하다. 기록에 따르면 약 네 종족만이 일처다부제를 채택한다. 대표적인 예가 티베트인데 그곳에서는 여자가 귀해서 형제가 한 여인과 결혼해서 산다. 이런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간 종족은 일부다처제를 채택한다. 물론 이 조사를 종족 수가 아니라 사람 수로 대체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세계 인구 중 대부분이 현대 기계문명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 수로 보면 일부일처제가 가장 보편적인 체제가 된다.

 

하지만 영장류 중에서 인간은 일부일처제의 성향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다.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영장류는 번식기가 되면 암컷의 체외 생식기가 커다랗게 부풀어 오르면서 번식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걸 널리 광고한다. 그러나 인간 여성은 언제 배란을 하는지 본인 자신도 알지 못한다. 따라서 아무리 남편이라도 자기 아내가 언제 배란을 하는지를 알려면 날짜를 세는 수밖에 없다. 이른바 ‘은폐된 배란 (concealed ovulation)’이라고 불리는 이 독특한 진화 현상이 인간으로 하여금 일부일처제를 채택하도록 만들 수 있다.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영장류 수컷들처럼 여러 암컷에게 관심을 보이다 보면 이리저리 배란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남성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전략은 한 여인을 선정하여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되도록 자주 잠자리를 하는 방법이다. 그래야 그 여인의 배란기에 맞춰 짝짓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만큼 자신이 그 여인이 낳는 아이의 아버지일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나는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책에서 결혼은 원래 남성이 원해서 만들어진 제도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력한 아기를 키우려면 일부일처제가 효율적


또한 인간은 자연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무기력한 새끼를 낳는 동물이다. 뇌조직의 겨우 25% 정도만 갖춰 태어나는 바람에 침팬지 아이가 나무를 탈 때 우리 아이들은 몸도 한번 제대로 뒤척이지 못한다. 태어난 지 거의 1년이 되어야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를 낳아 어떻게 아프리카 초원에서 살아남겠다고 생각했는지 생각할수록 대책이 서지 않는 동물이 우리 인간이다. 이처럼 무기력한 아기를 키우는 데 가장 효율적인 체제가 바로 일부일처제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옛말이 있다. 요즘엔 참 보기 힘든 곤충이지만, 쇠똥구리는 소나 말 같은 초식동물의 똥을 둥글게 말아 땅 속에 파묻고 그 안에 알을 낳는다. 송장벌레는 새나 쥐 같은 비교적 몸집이 작은 동물의 시체를 찾아 동그란 공 모양으로 다듬어 땅 속에 묻고 그 안에 알을 낳는 곤충이다. 둘 다 혼자서 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일이다. 그래서 암수가 짝을 이뤄 먹이 자원을 찾아 알을 낳아 함께 기른다.

 

부부가 함께 자식을 기르는 대표적인 동물은 역시 새들이다. 새들의 세계에서 암컷이나 수컷이 혼자 자식을 기르는 예는 거의 없다. 둥지에 알을 놔둔 채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 일은 절대적으로 위험한 일이다. 하다못해 동성애자 부부가 함께 자식을 돌보는 경우는 있을망정 홀어머니 또는 홀아비는 사고가 난 경우를 제외하곤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갈매기는 매우 모범적인 일부일처제를 실행하는 동물이다. 갈매기 부부의 하루 일과를 지켜보면 거의 완벽하게 12시간씩 집안일과 바깥일을 나누어 한다. 한 마리는 밖에 나가 먹이를 물어오고 그 동안 다른 한 마리는 둥지에 앉아 알을 품는다. 그리고 수시로 서로의 임무를 교대한다. 갈매기는 또 평생을 해로하는 동물이다. 겨울을 피해 따뜻한 지방으로 이주했다가 번식기가 되면 다시 조상 대대로 자식농사를 짓던 지역으로 돌아온다. 먼저 도착한 갈매기는 작년에 함께 자식을 길렀던 짝을 찾느라 쉼 없이 울어댄다. 갈매기는 워낙 먼 길을 이주하는 동물이라 험한 여정에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다. 남들은 일찌감치 지난 해 함께 살림을 차렸던 연인을 만나 둥지를 틀기 시작하는데 영영 돌아오지도 못할 연인을 목이 메도록 불러대는 갈매기의 울음이 자못 서글프다.

 

 

연속일부일처제는 일부다처제와 마찬가지

그러나 이런 갈매기들도 이혼을 한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심리학과 교수 핸드(Judith Hand) 박사의 관찰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바닷가의 갈매기들은 네 쌍 중 한 쌍이 일년을 넘기기 무섭게 갈라선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요즘 두 쌍의 하나 꼴로 이혼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세 쌍의 한 쌍이 이혼을 한다지만 캘리포니아 갈매기들의 이혼율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갈매기들이 이혼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함께 자식을 키우는 과정에서 너무 마음이 맞지 않더라는 것이 이혼 사유이다. 갈매기 부부는 집안일과 바깥일을 서로 교대할 때 덕수궁 수문장 교대 뺨칠 정도로 요란한 교대 의례를 거친다. 이혼한 갈매기 부부의 지난 해 행동을 분석해보니 교대식이 유난히 길고 시끄러웠단다. 서로 위험한 바깥일은 덜 하려 하고 집에 더 있겠다며 버티는 바람에 자주 다툰 부부들이 이혼했다. 아이를 보는 일일랑 서로에게 떠맡기고 그저 밖으로만 나가려는 요사이 우리 맞벌이 부부들과는 정반대의 이유로 다툰다.

 

 

이혼과 재혼은 일부일처제에 무시 못할 변이를 제공한다. 이혼한 다음에 재혼하는 비율은 여성보다 남성이 훨씬 높다. 이혼 당시 아직 자식을 길러야 하는 여성들의 경우에는 자식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리고 남성들이 재혼할 때 대부분 젊은 여성을 선호하기 때문에 여성들의 재혼은 남성에 비해 그리 흔하지 않다. 어느 특정한 순간에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더라도 평생 여러 번 결혼을 하면 결국 일부다처제의 효과를 얻는 것이다. 그런 경우를 연속일부일처제(serial monogamy)라고 부른다. 꼭 연속일부일처제가 아니더라도 성에 관한 남녀의 근본적인 전략 차이 때문에 여성들은 동시에 여러 남성의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남성은 동시에 여러 여성의 몸을 통해 자식을 얻을 수 있다. 내가 미시건 대학의 교수로 부임한 1992년 이후 아예 가족끼리도 늘 가깝게 지낸 진화인류학자 로라 벳직(Laura Betzig)은 벌써 20년 가까이 ‘불후의 명저’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서양의 역사를 성을 둘러싼 남녀간의 갈등의 역사로 새롭게 정립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에 따르면 결국 인류의 역사는 보다 많은 여성의 몸을 빌려 번식성공도를 극대화하려는 남성들의 경쟁의 역사라는 것이다. 자연계의 다른 동물들의 역사와 우리 역사가 그리 다를 바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번식 구조는 암수간의 성적 갈등에 의해 결정된다

한 종의 번식구조는 번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수간의 갈등이 어떤 방식으로 풀리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1997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출판부에서 내가 펴낸 <곤충과 거미류의 번식구조의 진화(The Evolution of Mating Systems in Insects and Arachnids)>는 번식구조가 고정된 종특이적인(species-specific) 현상이 아니라 각각의 개체군이 처한 환경에서 번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 요인들이 유동적으로 상호작용하며 빚어내는 결과임을 밝혔다. 번식구조가 성적 갈등(sexual conflict)에 의해 결정된다면 얼마나 유동적일지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가 한 다음과 같은 말에 잘 드러나 있다.

 


“서로의 유전자의 50%를 공유하는 부모와 자식간에 이해의 갈등관계가 존재한다면,

서로 유전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배우자간의 갈등은 얼마나 심각하겠는가?”

 

 

 

최재천
 최재천 /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대담>등이 있다. 2000년 제 1회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수상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1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