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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 신비로운 과학세계

[스크랩] 빅뱅의 결정적 증거 - 대폭발의 메아리

minjpm 2009. 12. 7. 18:06

20세기에 이룩된 가장 위대한 과학적 성취는 우주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빅뱅 이론의 등장으로 가능해졌다. 하지만 빅뱅 이론이 처음부터 과학자들로부터 널리 인정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새로운 과학이론이 올바른 이론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하나는 관측결과와 일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 번도 예측되지 않은 사실을 예측하는 것이다.

 

 

빅뱅 이후, 플라즈마 상태에 있던 우주는 천천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빅뱅 이론은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의 90%가 수소이고 나머지 대부분이 헬륨인 것을 설명한다. 하지만 빅뱅 이론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무거운 원소들의 존재비를 설명하지 못하는 사실을 두고 빅뱅 이론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는 가모프(George Gamow, 1904~1968)의 주장과 달리 빅뱅에서 모든 원소들이 생성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랄프 앨퍼(Ralph Asher Alpher, 1921~2007)는 이 문제를 제쳐두고 로버트 허먼(Robert Herman, 1914~1997)과 함께 빅뱅 이후의 우주의 진화과정을 추적하는 일을 계속했다. 핵합성이 멎은 우주는 계속 식어가고 있었다. 우주의 온도는 아직 100만 K(절대온도)가 넘었다. 이  온도에서 물질은 플라즈마 상태로 있게 된다. 플라즈마 상태는 원자핵과 전자가 서로 결합하지 못하고 서로 뒤섞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음전하를 띤 전자들은 양전하를 띤 원자핵과 전기적 인력으로 서로 결합하려 하나, 우주의 온도가 너무 높아서 움직이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서로 결합하지 못하고 서로 튕겨내어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주는 팽창과 더불어 계속 식어가고 있었으므로 어느 시점에서 이들은 서로 결합하여 안정된 중성원자인 수소와 헬륨을 형성할 것이다. 앨퍼와 허먼은 우주의 온도가 3000K로 식었을 때 이러한 일이 일어났으며 빅뱅으로부터 약 30만년이 지났을 무렵으로 예측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될까? 우주에는 원자 외에 또 다른 구성 성분이 있었다. 바로 빛이다. 빛은 전하를 띤 입자들과는 쉽게 상호작용한다. 따라서 빛은 플라즈마 상태에서는 얼마 진행하지 못하고 전자에 흡수되었다가 다시 재방출되는 과정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였다. 이러한 상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 속과 같았다. 하지만 원자핵과 전자가 서로 결합하자 플라즈마는 사라지고 우주는 기체 상태의 중성입자로 가득하게 되었다. 빛은 기체 속의 중성입자들과는 상호작용하지 않으므로 빛은 자유롭게 우주공간을 떠돌게 되었다. 그리고 이 빛은 우주의 팽창과 더불어 파장이 계속 길어지게 되었다.

 

앨퍼와 허먼은 원자핵과 전자가 결합하는 순간에 방출된 빛의 파장은 대략 1μm 정도였으며 현재는 1mm 정도일 것으로 예측하였다. 그리고 우주의 온도는 5K로 떨어졌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파영역이다. 전자와 원자핵의 결합은 우주의 모든 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이 빛은 우주에 가득해야 하고 모든 방향에서 오고 있어야 한다. 알퍼와 허먼은 이 빛은 오늘날에도 우주를 떠돌고 있으므로 이 빛을 검출한다면 빅뱅이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빛을 우주배경복사(CMB, cosmic microwave background radiation)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의 주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그 빛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당시의 마이크로파 기술은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었으므로 온도가 너무 낮아서 희미한 에너지를 관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빅뱅 이론의 잘못인 우주의 나이 문제는 이론이 아닌 측정의 오류 때문이었다

빅뱅 이론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는 우주의 나이 문제 때문이었다. 허블이 발견한 허블의 법칙으로부터 계산한 우주의 나이는 엉뚱하게도 당시 알려져 있던 지구의 나이보다 더 젊었다. 이 때문에 빅뱅우주론은 정상우주론자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다. 이것은 허블의 측정에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독일태생의 천문학자 발터 바데(Walter Baade, 1893-1960)였다.

 

허블은 은하들 안에 있는 별의 스펙트럼으로부터 은하가 멀어지는 속도를 구하고 은하까지의 거리는 맥동변광성 주기-광도 관계를 이용했다. 맥동변광성은 별이 부풀어 올랐다 수축했다 하면서 밝기가 주기적으로 변하는 별을 말한다. 이 별은 변광 주기에 비례하여절대광도가 높은 성질이 있다. 그 이유는 밝은 별일수록 질량이 커서 맥동주기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맥동변광성의 변광 주기를 측정하면 별의 절대광도를 알 수 있고 이것을 겉보기 광도와 비교하면 그 별이 위치한 은하까지의 거리를 계산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변광성의 변광 주기는 1~50일이었는데 케페우스자리 델타 별이 대표 별이어서 케페이드 변광성이라 불렸다.


 

발터 바데는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창일 무렵 윌슨산 천문대에 있었다. 당시에는 맥동변광성의 또 다른 유형으로 거문고자리 RR변광성이 알려져 있었다. 이 변광성은 케페이드 변광성 보다 변광 주기가 짧고(1~24시간) 더 어두웠다. 그는 이 변광성을 이용하여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해보기를 원했다. 바데는 윌슨 산의 100인치 후커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거문고자리 RR형 변광성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때마침 인근에 내려진 등화관제로 근교 도시의 불빛이 차단되어 어느 때 보다 우주를 더 잘 볼 수 있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당시까지 알려진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는 약 100만 광년이었다. 그 정도의 거리라면 충분히 볼 수 있어야만 했다. 바데는 2차 대전이 끝난 후 팔로마 산에 설치된 당시로서는 가장 성능이 좋은  200인치 헤일 망원경으로 안드로메다 은하의 거문고자리 RR형 변광성을 찾아보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측정의 정확성이 늘어나자, 우주의 크기는 계속 커져만 갔다


바데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해 보았다. 단 한 가지 가능성은 안드로메다까지의 거리 측정에 오류가 있는 경우였다. 당시 대부분의 별들이 종족 I과 종족 II의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는 것이 명확해지고 있었다. 종족 I의 별은 젊은 별이고, 종족 II의 별은 나이가 많은 별이다. 바데는 케페이드 변광성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뉠 것이라고 가정했다. 결국 이러한 추측이 맞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종족 I에 속하는 케페이드 변광성의 밝기는 같은 주기를 가진 종족 II의 별 보다 4배나 더 밝았다. 이것이 오류의 원인이었다. (종족 II에 속하는 케페이드 변광성은 처녀자리 W별이 대표별로 처녀자리 W형 변광성이라 불린다.) 허블은 종족 II의 케페이드 변광성에서 얻은 주기-광도관계를 종족 I의 별에 적용했던 것이다.

 

이 오류를 수정하자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는 허블이 추정했던 거리보다 2배로 늘어나 약 200만 광년이 되었다. 그런데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는 다른 은하까지의 거리를 재는 척도로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모든 은하까지의 거리도 2배로 늘어나서 우주의 크기도 2배로 늘어났다. 덩달아 우주의 나이도 두 배인 36억년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이제 우주의 나이는 당시에 알려져 있던 지구의 나이와 더 이상 마찰을 일으키지 않게 되었다. 1952년 바데는 국제천문학회에서 공식적으로 은하의 나이가 2배로 늘어났다고 발표하였다. 이 결과에 가장 당황한 사람은 호일(Fred Hoyle, 1915-2001)을 비롯한 정상우주론을 주장하던 사람들이었다.

 

앨런 샌디지(Allan Sandage, 1926~)는 바데의 측정을 2년 후에 다시 수정하였다. 또 다른 거리 측정의 오류가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케페이드 변광성 측정법은 먼 곳에 있는 은하까지의 거리를 측정하는데 사용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케페이드 변광성이 다른 별보다 밝기는 하지만 그렇게 먼 거리에 있는 은하에서 케페이드 변광성을 찾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가장 밝은 별의 밝기가 모든 은하에서 같다는 가정 하에 먼 은하까지의 거리를 구했다. 하지만 사진 기술의 발달로 샌디지는 멀리 있는 은하에서 별처럼 보이던 것이 별이 아니라 빛나는 가스와 플라즈마의 구름인 HII 영역임을 알았다. HII 영역은 넓고 온도가 높아서 별보다 더 밝게 보인다. 이 때문에 HII 영역을 별로 계산한 은하는 실제로 더 멀리 있었던 것이다. 이 오류를 수정하자 우주의 나이는 다시 55억년으로 늘어났다. 샌디지는 거리 측정을 계속하여 은하까지의 거리와 우주의 나이를 측정하는 최고 전문가가 되었다. 그의 노력으로 우주의 나이는 100억년~200억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더 이상 정상우주론자들이 우주가 그 안에 있는 별들의 나이보다 어리다고 놀릴 수 없게 되었다.

 

 

전파를 통한 우주관측은 우주를 더 멀리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오늘날 우주관측은 눈으로 보이는 빛, 즉 가시광선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전파나 적외선을 이용한 우주관측과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자외선이나 X선, 감마선 등을 이용한 우주관측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파장이 긴 적외선은 저온의 천체에서 방출된다. 적외선은 가시광선보다 성간 먼지층을 잘 통과하므로 어두운 성운 속을 들여다보는데 효과적이다. 이 때문에 적외선 관측은 별이 태어나는 성운 속이나 성간 먼지층이 많은 은하중심을 관측하는데 유리하다. 반면에 파장이 짧은 X선은 고온의 천체에서 방출된다. X선 관측은 뜨거운 백색왜성이나 초신성 잔해, 블랙홀 등 죽어가는 별을 관측하는데 효과적이다.

 

 

우주에는 가시광선 외에 다른 형태의 빛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낸 사람은 칼 잰스키(Karl Guthe Jansky, 1905~1950)였다. 그는 이미 1930년대에 은하에서 전파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너무 시대를 앞서 갔기 때문에 오랫동안 잊혀진 채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세계 대전을 지나면서 발달한 레이더 기술에 의해, 잰스키의 발견이 우주 관측에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세계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는 독일의 공습과 로켓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레이더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였다. 제2차 대전이 끝나자 레이더 장비는 우주관측에 활용되었는데 이를 통해 우주에는 강한 전파를 방출하는 은하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전파은하라고 하는데 이 부분의 선두주자였던 마틴 라일(Martin Ryle, 1918~1984)은 전파은하들이 거리에 따라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알면 어떤 우주모델이 옳은지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1961년에 5,000개의 전파은하 목록을 작성하고 그 분포를 조사했다. 전파은하들은 거리가 멀수록 더 많이 분포하고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과거와 현재의 우주가 똑같다고 주장하는 정상우주모델과 배치되는 것이었다.

 

또 1963년에 마틴 슈미트(Maarten Schmidt, 1929~)는 라일이 작성한 전파은하 목록의 273번째 전파원(3C273)의 스펙트럼을 분석하여 이 전파원이 24억 광년 거리에 있는 천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 동안 이 전파원은 크기가 작아서 우리 은하계 안에 있는 특이한 별로 생각되어왔었다. 이 천체는 극단적으로 밝고,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로 퀘이사(Quasar, QUASi-stellAR radio source)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퀘이사의 정체는 초기 은하의 핵이라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다. 그 후 많은 퀘이사들이 발견되었는데 대부분의 퀘이사는 수십억 광년 너머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퀘이사가 수십억 년 전에 존재했던 천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초기의 우주가 현재의 우주와 매우 달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퀘이사의 발견으로 정상모델은 신뢰를 잃었고 많은 우주학자들은 빅뱅모델을 지지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마침내 찾아낸 빅뱅 우주론의 결정적인 증거, 우주배경복사

전파관측은 우주로 향하는 새로운 문을 열었고 새로운 천체를 발견했으며 빅뱅과 정상우주론 논쟁에 유리한 증거를 제시했다. 전파관측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1964년에 마침내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다. 벨연구소의 아르노 펜지아스(Arno Allan Penzias, 1933~)는 로버트 윌슨(Robert Woodrow Wilson, 1936~)과 함께 나팔모양의 전파안테나를 이용해 전파잡음을 연구하던 중 우연히 하늘 전역에서 들어오는 전파잡음을 발견하였는데 그 정체를 모르고 있었다. 이들이 발견한 것이 우주배경복사라는 사실은 MIT에 있던 버크(Bernard Burke)라는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된다. 당시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디키(Robert Ducke)와 제임스 피블스(James Peebles)는 가모프와 알퍼와의 연구내용을 모르는 채 다른 관점에서 우주배경복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버크는 피블즈의 강연을 듣고 그 사실을 펜지아스에게 알려 주었던 것이다.  

 

 

펜지아스와 윌슨이 발견한 우주배경복사의 온도는 3.5±1.0K (최근 WMAP 관측결과는 2.7K)였고, 파장은 7.3cm였다. 이는 1948년에 앨퍼와 허먼이 예측한 결과와 거의 일치했다. 빅뱅의 메아리는 전파로 바뀌어 펜지아스와 윌슨의 전파망원경에서 잡음으로 감지되었던 것이었다. 마침내 앨퍼와 허먼이 빅뱅의 증거로 예측했던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된 것이다.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은 우주가 빅뱅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증거였고 정상우주모델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버드 대학의 물리학자 에드워드 퍼셀은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그 공로로 펜지아스와 윌슨은 1978년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가모프는 1968년에 사망하여 관례에 따라 노벨상수상자가 될 수 없었지만 랠프 앨퍼가 공동수상자가 되지 못한 것은 빅뱅의 증거를 처음 예측했던 그의 선구적 노력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음을 의미했다.

 

 

 

 김충섭 /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수원대학교 물리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동영상으로 보는 우주의 발견> <메톤이 들려주는 달력 이야기> <캘빈이 들려주는 온도 이야기> 등이 있다.

이미지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physics/1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