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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 신비로운 과학세계

[스크랩] 오징어, 쭈꾸미 - 과연 다리인가 팔인가??

minjpm 2009. 12. 24. 18:21

아슴푸레 흐르는 동해안 수평선 바다끄트머리에는 오늘 밤에도 오징어 배들이 떼 지어 늘어서서 대낮같이 훤히 불을 켜놓고 있다. 집어등(集魚燈)의 불빛을 어화(漁火)라고 하는데, 좀 낭만적으로 불러 ‘고기잡이 꽃(漁花)’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휘황찬란한 광경에 눈을 떼기 아쉬운 불바다! 밤바다도 이렇게 멋진 풍광(風光)을 연출한다.

 

 

 

 

오징어잡이 배의 휘황찬란한 광경 속에 숨어 있는 먹이사슬

갖은소리 작작해라. 헉헉! 숨이 턱에 닿도록 힘들게 낚싯줄 끌어 올리는 어부는 죽을 맛이다. 여름밤 가로등에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오징어도 밝은 불빛 쪽으로 몰려온다. 실은 불빛이 좋아서가 아니다. 불빛 보고 플랑크톤이 수면으로 떠오르면(양성주광성) 그걸 먹겠다고 새우, 작은 물고기가 혈안이 되어 따르고, 잇따라 오징어가 내달려 몰려드는 것이다. 당랑재후(螳螂在後)라, 눈앞의 매미를 노려보는 얼간이 사마귀는 제 뒤에서 참새가 노려보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사마귀를 잡으려드는 엇절이 참새는 바로 뒤에 포수가 엿보고 있음을 끝내 알지 못 하네….

 

아예 물 반 오징어 반이라 미끼도 없는 흐르는 낚시 바늘에 배, 다리, 옆구리, 등짝이 꿰여 올라온다. 그 불빛 아래에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먹이연쇄)이 이어지고 있구나. 헌데, 세상에 먹고 먹힘이 없는 것(곳)이 없다. 어느 시인은 대뜸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구나.”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모든 원인은 내 안에 있나니….

 

 

오징어는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먹물을 내뿜는다

오징어를 오적어(烏賊魚), 묵어(墨魚)라고도 불러왔는데, 이 두 말을 풀어보면 “도적을 만나면 검은 먹물을 내뿜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듯하다. 목숨앗이(천적)를 만났거나 공격의 기미를 알아차리면 어느새 행동이 표변한다. 몸 안, 외투강(外套腔) 속에 든 물을 순간적으로 확! 내뿜는다. 물이 오그린 깔때기(수관,siphon)를 빠져나가는 분사운동으로 제트수류를 일으켜서 휙! 달려 나간다.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머리를 움츠리고 다리를 바싹 오므려서 잽싸게 도망을 친다. 피 말리는 숨바꼭질이다. 엔간히 도망을 가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으면 먹물을 퍼뜩 뿜어버리고 내뺀다. 흑! 흑! 냄새를 맡으면서 먹이 감을 찾느라 헛바퀴 도는 사이에 멀찌감치 도망친다. 따라오던 물고기가 구름먹물에 눈이 가려서 먹이를 놓치는 것이 아니다. 오징어의 생존전략이 어떤가!

 

 

오징어 다리는 발인가? 팔인가?

오징어, 낙지, 문어 등을 묶어서 연체동물(軟體動物)의 두족류(頭足類, cephalopoda)라 부른다.


 

머리몸통에 다리가 붙어있는 괴이한 꼴을 하는 동물이다. 하긴 녀석들은 우리를 보고 괴상하다 하겠지. 아무튼 오징어, 갑오징어, 꼴뚜기들은 다리가 10개인 십각목(十脚目)이고 문어, 낙지, 주꾸미 등은 다리가 여덟 개인 팔각목(八脚目)이다. 우리는 ‘다리(脚,foot)’라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팔(腕,arm)’이라 하니 십완목(十腕目), 팔완목(八腕目)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오징어 다리가 발이냐 팔이냐?

 

그리고 오징어를 보면 두 개의 긴 다리(촉수,觸鬚,tentacle)를 가지고 있으니 그것은 운동이 목적이 아니고, 먹잇감을 잡거나 암컷을 움켜잡아 정자덩어리(정포,精包)를 외투강에 넣어주는 교미기(交尾器) 역할을 한다. 어쨌거나 마른 오징어를 살 때는 발이 몇 갠가를 챙겨야할 것이고, 덧붙여서 몸통에 달랑, 동그란 무엇이 하나 붙어있으니 그것도 따져봐야 한다. 그것은 입이다. 그 안에는 연체동물만이 갖는 치설(齒舌,radula)이라는 것이 들었다. 먹이를 그것으로 갉고 자르니 이(齒) 닮았고, 핥아 먹으니 혀(舌) 비슷하다 하여 치설이라 부른다. 그 억센 부리로 살점을 뚝뚝 떼어내 먹는다. 오늘 따라 우리들 마음의 고향, 푸르고 끝 간 데 없는 망망대해, 오징어가 뛰노는 저 푸른 동해바다가 너무나 그립다.

 

 

오징어의 사촌, 꾀 많은 주꾸미


이어서 오징어 사촌인 주꾸미를 만나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서해안이 주꾸미의 삶터다. 주꾸미를 모르면 ‘작은 문어’정도로 여기면 된다. 옅은 바다에 살면서, 낮에는 꽤나 은둔적이지만 어둔 밤에는 온 사방 설쳐서 게나 새우 같은 갑각류를 잡아먹으며, 보통 때는 굼떠 보이지만 먹잇감만 보면 잽싸게 달려들어 확 덮치는 품이 더없이 날쌔다.

 

그리고 온 몸에 아주 예민한 색소세포(色素細胞,pigment cell)가 있어서 순간적으로 몸 빛을 쓱쓱 바꾼다. 몸체의 위장, 주눅 들지 않는 경계(警戒), 동성에 대한 위협, 이성에 대한 구애들을 위해서 능수능란하게 이색저색 넘나드는 초능력을 가진 주꾸미다. 두족류는 하나같이 자웅이체(雌雄異體)로, 암수가 만나면 온 몸의 색깔을 이리저리 바꾸어서 “네가 좋다, 싫다.”를 알린다. 그런가하면 혹여 수놈끼리 만나는 날에는 난리가 난다.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적자생존의 바다가 아닌가. 다투다가 수틀리면 생명을 맞바꾸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여태 어깃장 놓던 암놈이 좋다고 수런거리면 재빨리 암놈한테 버럭 달려들어 정자덩어리를 외투강에 집어넣는다.

 

 

주꾸미는 피뿔고둥 껍질 속에 알을 낳는다

이렇게 씨를 받은 암컷 주꾸미는 산란장(産卵場)인 피뿔고둥을 찾아 나선다. 피뿔고둥은 뿔소라 과(科)에 드는 놈으로 입 둘레가 원체 붉은 색이어서 ‘피’란 말이 붙었고, 껍질에 작은 ‘뿔(돌기)’이 나있어 ‘피뿔고둥’이다. 껍질이 아주 두껍고 야물며, 껍질높이가 15 cm나 되니 쉽게 비유하면 글 쓰는 이의 주먹보다 더 크고 입(각구, 殼口)이 크고 넓어서 주꾸미가 들어앉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리고 육식성으로 이미 본 란에 설명한 ‘조개껍데기에 구멍 내기’가 이놈의 전공이기도 하다.

 

아무렴 주꾸미의 사랑 또한 기특하다. 피뿔고둥의 안벽에다 알을 낳아 붙이고 입구에 떡 버티고 앉아서 어엿이 알을 지킨다. 노심초사, 애써 빨판(흡판, sucker)으로 알을 닦아주고, 맑은 물을 일부러 흘리면서 치성(致誠)을 다한다. 몸이 빼빼 마르고 성한 데가 없다. 주꾸미도 아프게 가슴앓이 하는 곡진한 모성애가 있다. 

 

이제 주꾸미를 잡아보자. 먼저 피뿔고둥의 껍질에 구멍을 뚫어 길 다란 줄에 텅 빈 고둥을 디룽디룽 줄줄이 매달고 해저물녘에 배타고 나가서, 주꾸미가 많이 들것을 비손하면서 밧줄을 바다에 늘어뜨린다. 하룻밤 새우고 다음 날 새벽녘에 나가서 다시 걷어 올린다. 피뿔고둥 속에 주꾸미가 들었다!  빈 고둥껍질이 낚시 바늘인 셈이다. 회 한 접시에도 민중의 역사와 삶이 스며있다고 하던가. 주꾸미와 고둥의 조우(遭遇), 예사롭지 않는 거룩한 만남이다.

 

 

위기가 닥치면 피뿔고둥 껍질 속에 숨는 주꾸미

영리한 주꾸미 놈의 어처구니없는 습성 하나를 더 보자. 바깥나들이 나갔다가 이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주꾸미, 이게 웬 떡이냐 하고 달려온 물고기 눈에는 식겁 먹고 꽁지 빠지게 달아난 녀석은 보이지 않고 어이없게도 입뚜껑(구개,口蓋, operculum)을 꽉 닫은 피뿔고둥 만이 덩그러니 버티고 있으니…, 머쓱하게도 닭 쫓던 개가 되고 말았다! 기겁한 주꾸미는 헐레벌떡 쫓기면서도 납작한 조개껍데기 하나를 덥석 물고 와 몸통을 쓰~윽 고둥 안에 비집어 넣고는 그 조가비로 퍼뜩 입을 틀어막아버린다. 이럴 때 엿 먹인다고 하던가? 암튼 신통한 일이로고! 도대체 주꾸미 너는 그것을 어찌, 어디서 터득했느냐? 어머니가 기꺼이 가르쳐 주셨답니다! 참, 자식은 부모를 비춰 보이는 거울이라 했지.

 

 

 

 

수구초심! 피뿔고둥은 주꾸미의 영원한 고향

물고기는 물 없으면 죽지만 물고기가 없어도 물은 물이다. 고둥은 주꾸미가 없어도 고둥일 뿐. 어째서 주꾸미는 대대로 알을 그 고둥 속에다 낳는 것일까. 제가 낙지(落地,태어남)하여 제일 먼저 보고 접한 것이 그 고둥이었고, 거기가 모천(母川)으로 각인된 탓이다. 연어는 그 먼 길을 돌아 제가 태어난 어머니 강으로 오고 마찬가지로 주꾸미도 제가 배태한 바로 그 고둥을 찾아와 거기에 새끼를 낳는다. 귀소본능이라는 것이다. 참 오묘한 생물들의 세계로다. 온통 생명의 시원인 태생지를 찾아든다. 수구초심(首邱初心)! 우리도 고향을 언제나 그리며 살지 않는가. 고향은 핏줄 속에 녹아 흐르는 모천으로, 가뜩이나 나이를 한가득 먹으니 부쩍 그리움이 늘어만 간다.


피뿔고둥은 꾀보 주꾸미가 태어난 안태본(安胎本)이다. 서해의 주꾸미들은 피뿔고둥을 집 삼아 달빛 괴괴한 차가운 바다 밤을 오롯이 지 샐 것이다. 그야말로 일렁이는 바다는 본래 낮고, 넓고, 깊은 곳이렷다.

 

 

 

권오길 /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저서로는 [생물의 죽살이], [꿈꾸는 달팽이], [인체 기행] 등이 있다. 한국 간행물 윤리상 저작상(2002), 대학민국 과학 문화상(2008) 등을 수상했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 연합뉴스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science/biology/1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