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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리스트 - 교향시 3번 '전주곡'

minjpm 2010. 10. 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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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프란츠 리스트는 ‘피아노의 파가니니’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당대의 어떤 피아니스트보다도 화려한 테크닉과 현란한 쇼맨십을 과시하며 청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최고의 비르투오소로 각광받았고, 나아가 근대 피아노 연주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한 독창적이고 위대한 연주가로 존경받았다. 하지만 30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그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순회 연주가로서의 요란한 인기와 부를 뒤로 하고 보다 진중한 행보로 인생의 새 장을 열어나갔던 것이다.

 

no 아티스트/연주  
1 리스트 - 전주곡 / 레너드 번스타인,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듣기

10월 12일까지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음원제공 : 소니뮤직

 

 

 

초인적인 창작력을 선보인 바이마르 시대

리스트의 변신은 한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1847년 2월, 리스트는 러시아의 키예프에서 카롤리네 자인-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Princess Carolyne zu Sayn-Wittgenstein)을 처음 만났다. 당시 남편과 별거 중이었던 그녀는 리스트를 추앙하는 다른 무수한 여인들과는 뭔가 달랐는데 리스트와 마찬가지로 깊은 종교적 감성, 문학에 대한 애착, 그리고 담배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졌고, 카롤리네는 러시아 남부에 있는 자신의 성으로 리스트를 데려갔다. 거기서 그녀는 순회연주 활동은 그만두고 작곡에 전념하라고 그를 설득했다. 연인의 의미심장한 충고를 받아들인 리스트는 9월의 엘리자벳그라드 공연을 마지막으로 피아니스트로서의 활동을 접고, 그 이듬해 독일의 소도시 바이마르로 가서 궁정 악장직을 수행하기 시작한다.


카롤리네의 내조를 받으며 바이마르에 머물던 1848년에서 1861년 사이, 리스트는 가히 초인적인 업적을 쌓아올렸다. 먼저 그는 지휘자로서 무려 44편의 오페라를 바이마르 궁정극장 무대에 올렸는데, 그 중에는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위시한 25편의 동시대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울러 그는 후학들을 위한 강습회를 여는 한편, 작곡가로서도 놀라운 창작력을 발휘했다.


1858년 바이마르 시대의 리스트 모습. <출처: wikipedia>

 

유명한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초절기교 연습곡집], [시적이고 종교적인 하모니] 등 성숙기의 주요 피아노곡들을 썼고, 피아노와 관현악이 어우러지는 [피아노 협주곡] 두 편과 [죽음의 무도]도 배출했다. 무엇보다 그의 관현악 작품들 가운데 대다수가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는데, 그 목록에는 [파우스트 교향곡], [단테 교향곡] 등과 더불어 12편의 ‘교향시’들이 포진하고 있다. 교향시(Symphonic Poem)란 관현악에 의한 표제음악의 일종으로, 말 그대로 ‘교향곡symphony’과 ‘시 poem’'라는 두 개념이 만나 낭만주의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장르이다. 간략히 말해서 ‘시적인’ 내용을 ‘교향곡적인’ 형식 속에 담아낸 음악인데, 다만 교향곡과는 달리 단악장 구성을 취한 형태가 일반적이고, 이런 맥락에서 기존의 ‘연주회용 서곡’과도 관련이 깊다. 이 장르를 창시한 장본인이 바로 바이마르 시절의 리스트였다. 그는 [타소], [오르페우스], [마제파] 등 모두 13편의 교향시를 남겼는데, 여기 소개하는 [전주곡 Les Préludes]은 그 중 가장 유명하고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철학적 교향시’


[전주곡]은 이른바 '철학적 교향시'로 분류되는 작품으로서 그 주제는 다분히 추상적이고 상징적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프랑스의 시인인 알퐁스 드 라마르틴(Alphonse de Lamartine)의 ‘신(新) 시적 명상록 Nouvelles méditations poétiques’에 수록된 송시(Ode)에서 유래했는데, 1856년 4월에 출판된 악보에는 작품의 대의를 설명한 서문이 붙어 있다. 라마르틴의 송시에 기초하여 공작부인 카롤리네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서문의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다.

우리의 인생이란 죽음에 의해 그 엄숙한 첫 음이 연주되는 미지의 찬가에 대한 전주곡이 아니겠는가? - 사랑은 모든 존재의 눈부신 여명이다. 그러나 매서운 바람이 아름다운 환영을 흩어 버리고 격렬한 전광이 제단을 파괴해버리는 폭풍우에 의해서 그 최초의 행복의 환희가 중단되지 않을 운명이 어디 있겠는가? 처참하게 상처 입은 영혼은 그 격랑이 지나간 뒤 전원생활의 고요한 평온 속에서 아픈 기억을 달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품이 베푸는 자비 깊은 평안의 향락 속에 오래도록 안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나팔소리가 경보를 울리면, 그는 다시금 위험한 전장으로 돌진한다, 전투를 통해서 완전한 자각과 활력을 되찾기 위하여

다소 의고적인 문투와 장황한 문체가 좀 껄끄럽긴 하지만, 이 서문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지침이 된다. 그러면 이제부터 위 내용을 찬찬히 살피면서 음악에 귀를 기울여 보자.


현악군의 엄숙한 피치카토로 시작되는 안단테의 도입부는 ‘인생이란 죽음(과 이후의 세상)에 대한 전주곡’이라는 대전제를 암시하는 듯하다. 여기서 서서히 상승하며 차츰 활력과 열기를 더해가는 선율의 흐름은 마치 죽음의 차원에서 삶의 차원으로 이행해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리고 마침내 안단테 마에스토소의 주부로 진입하면 트롬본과 파곳, 저현부가 앞에서 나온 선율의 변형인 주제를 힘차게 연주한다. 이 부분은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주인공인 영웅의 등장을 알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음악은 인생의 다양한 국면을 대표하는 네 개의 에피소드를 차례로 거쳐 간다. 그 첫 번째는 사랑의 에피소드이다. 첼로와 호른이 주도하는 아름다운 칸타빌레 선율이 꿈결 같은 행복의 나날을 그려 보인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템포가 알레그로로 바뀌어 인생의 시련을 상징하는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이 격렬한 소용돌이가 차츰 가라앉으면, 이번에는 전원에서의 휴식을 나타내는 알레그레토 파스토랄레의 세 번째 에피소드가 이어진다.

 

잉글리시 호른이 이끌어낸 목가적인 정취 속에서 호른에서 흘러나온 정겨운 선율이 목관악기들을 옮겨 다닌다. 그러는 동안 템포가 조금씩 빨라지고 분위기도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며 휴식은 흥겨운 축제로 발전한다.


[전주곡] 네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격렬한 전장과 영웅의 모습이 음악을
절정으로 이끈다. <출처: wikipedia>

 

그 정점에서 시작되는 네 번째 에피소드는 알레그로 마르치알레 아니마토의 용감한 행진곡으로 진행된다. 휴식을 통해서 원기와 의지를 회복한 영웅이 다시금 전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소리 높여 울려 퍼지는 트럼펫의 팡파르가 전쟁 같은 일상으로의 복귀를 알리고, 자신의 존재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찾아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영웅의 모습이 당당히 부각되면서 음악은 장려한 클라이맥스로 치달아간다. 이렇게 보면 [전주곡]이라는 교향시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담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쩌면 이 작품의 진정한 의의는 사랑, 시련, 휴식, 투쟁이라는 일련의 이미지들을 통해서 독일 낭만주의자들의 인생관을 응축해서 보여준다는 데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작품의 유래를 면밀히 돌아보면, 이와는 다른 해석의 여지도 있음을 알게 된다.

 

 

 

전주곡’ 또는 ‘네 개의 원소’ – 작품의 기원

교향시 [전주곡]은 1854년 2월 23일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초연되었지만, 그 기원은 184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여름 리스트는 프랑스 남부의 마르세유에서 조셉 오트랑(Joseph Autran)이라는 시인을 만났다. 오트랑은 리스트에게 각각 ‘북풍 Les aquil ons)’, ‘대지 La terre’, ‘홍수 Les flots’, ‘별 Les astres’이라는 제목을 가진 네 편의 시를 선물했고 리스트는 그 시들을 가지고 [네 개의 원소 Les quatre éléments]라는 합창곡을 작곡했다. 그리고 몇 년 후 리스트는 이 합창곡을 관현악 반주용으로 편곡하면서 별도의 서곡을 덧붙이게 되는데 1848년에 새로 추가된 이 서곡이 바로 교향시 [전주곡]의 원형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서, 합창곡 [네 개의 원소]에서 재료를 취해 만들어진 서곡이 원래의 합창곡에서 분리된 다음 개정을 거쳐 지금의 [전주곡]이 되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 교향시의 제목이 왜 ‘네 개의 원소’가 아닌 ‘전주곡’으로 변경된 것일까? 이에 관해서는 몇 가지 가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오트랑의 시에 만족하지 못했던 리스트가 직접 다른 텍스트를 찾아 나섰다는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처음에 리스트는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도움을 바랐으나 무위로 돌아갔고, 결국 라마르틴의 시집에서 작품의 내용에 부합하는 텍스트를 찾아냈다고 한다.


리스트가 사랑한 카롤리네 자인-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
<출처: wikipdedia>

 

다른 가설들은 작품이 초연된 1854년까지 오트랑의 시들이 출판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평소 라마르틴을 좋아했던 카롤리네가 새로운 텍스트를 추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작부인은 [전주곡]을 비롯한 리스트의 교향시들에 대한 서문을 손수 작성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가설은 사뭇 낭만적인데, 연인의 취향을 익히 알고 있었던 리스트가 카롤리네가 좋아하는 시의 제목을 붙인 교향시의 악보를 그녀의 생일에 선물로 바쳤다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오매불망 리스트가 위대한 작곡가의 반열에 오르기를 소망했던 그녀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그로부터 보름 후에 초연된 [전주곡]이야말로 오늘날까지 교향시의 역사상 길이 빛나는 걸작으로 인정받고 있으니 말이다.

 

 

추천 음반

우선 공히 레퍼런스적인 '리스트 교향시집'을 남긴 하이팅크와 마주어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하이팅크와 런던 필하모닉은 잘 다듬어진 앙상블과 무리 없는 전개로 견실한 인상을 주고, 마주어와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호방한 사운드와 남성적인 기백이 돋보인다. 다만 극적인 연출이라는 면에서 전자는 너무 무난하게, 후자는 너무 대범하게 접근한 듯하다. 보다 특별한 연주를 원한다면 베를린의 두 거장, 프리차이와 카라얀에게로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다.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를 지휘한 프리차이의 연주는 스테레오 초기의 낡은 음질이 못내 아쉽지만, 세부까지 공들여 다듬어낸 표정의 다채로움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상상력, 그리고 강건한 극적 흐름이 일품이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의 연주는 지휘자 특유의 연출이 지나치게 작위적인 감도 없지 않지만, 이른바 '낭만적 판타지'의 아우라가 전편을 지배하는 개성 만점의 연주이다. 한편 최근의 음반들 중에서는 시대악기 오케스트라의 독특한 음색과 울림을 앞세운 이메르세일과 아니마 에테르나의 연주가 특히 흥미롭다.

 

 

 

황장원 / 음악 칼럼니스트, 교양강좌 전문강사
클래식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 역임.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

음원 제공 소니 뮤직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masterpiece/3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