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jpm(민제이피엠) 의 음악과 함께하는 삶~
SOUL CLAMP

클래식의 이해

[스크랩] 음악사조 여행 - 현대 음악

minjpm 2010. 10. 2. 13:05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그리고 20세기 이전 미국의 클래식 음악은 마치 유럽에서 수입한 와인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삶과 문화는 점차 독창적인 음악의 탄생에 좋은 여건을 제공했다. 그리하여 20세기 초 미국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음악 장르는 바로 재즈와 뮤지컬이었다. 미국 남부의 뉴올리언즈는 재즈의 고향이라 일컬어진다. 그러나 20세기에 갑자기 재즈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17세기부터 성행한 노예 무역은 백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사냥’한 흑인 노예들을 노예선에 태워 미 대륙으로 보내는 일이었다. 양계장이나 돼지우리보다도 못한 노예선 내의 비인간적인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고 도중에 사망하는 노예들도 많았다 한다. 노예제는 공식적으로는 19세기 중반 법으로 금지됐지만, 19세기 말까지도 버젓이 노예무역은 계속되었다.

 

 

 

재즈의 탄생이 클래식 음악에 미친 영향

이역만리에 끌려와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던 흑인들은 고향을 떠올리며 그리운 노래를 흥얼거렸다. 흑인들의 노래와 교회의 찬미가(Hymn)가 결합돼 만들어진 것이 흑인 영가(Negro Spiritual)이다. 흑인들이 생활의 애환을 노래한 것이 블루스(Blues)다. 흑인 영가와 블루스를 바탕으로 백인들이 연주하던 관악 연주(Brass Band), 예를 들어 프랑스 군악대의 편성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이 재즈다.


재즈는 뉴올리언스에서 증기선과 함께 미시시피 강을 거슬러 올라가 미국 중심부로 전파되었다.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전쟁 중에 불려졌고, 라디오가 발명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900년대 탄생해 ‘딕실랜드 재즈’라 불리던 뉴올리언스 재즈는 1930년대 스윙 재즈의 붐으로 이어졌다. 베니 굿맨과 글렌 밀러의 재즈 오케스트라들이 화려한 춤곡을 선보였다. 1940년대부터 시작된 비밥(Bebop)은 모던 재즈의 원점이 되었고 트럼펫이나 색소폰에 피아노, 리듬섹션(드럼, 베이스)이 추가 되었다. 1950년대 이후 하드밥과 그 이후 프리재즈, 퓨전재즈 등으로 재즈라는 장르는 점점 커져 갔다.


재즈는 20세기 클래식 음악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는데
드보르자크, 거슈인, 스트라빈스키 등은 재즈와 클래식이 융화된 작품을 남겼다.
<출처: NGD>

 

재즈는 탄생하자마자 클래식에 영향을 주었고, 나중에는 그 영향을 받았다. 드보르자크는 일찍이 흑인영가에 매료됐었고 드뷔시나 라벨, 스트라빈스키는 자신들의 작품에 재즈의 이디엄을 사용하거나 재즈라는 이름을 썼다. 라벨의 [바이올린 소나타], [피아노 협주곡 G장조]나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 [에보니 협주곡] 등이 그러했다. 재즈와 클래식이 완전히 융화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조지 거슈윈(1898~1937)이 있었기 때문이다. 1924년 거슈윈이 발표한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랩소디 인 블루]는 재즈 스타일과 낭만주의 피아니즘을 절묘하게 아우르고 있었다. 그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는 등장인물 전원이 흑인인 최초의 오페라로 기록되었다. 거슈인은 [Tell Me More], [Funny Face], [Crazy for you]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뮤지컬과 [Delicious], [Shall We Dance] 등의 영화음악 작품을 남겼다. 그 뒤 미국에서는 뮤지컬의 걸작들이 쏟아지게 된다. 특히 1957년 뉴욕필의 지휘자 겸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세계적으로 히트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2음 음악의 탄생 – 아르놀트 쇤베르크

1옥타브 12개의 음을 모두 똑같은 가치를 가지는 음으로 다루는 음악 기법. 이 12음 기법에 의해 작곡된 음악을 12음 음악이라 한다. 12음 음악은 듣기가 녹록치 않아 많은 사람들이 현대음악을 기피하게 한 장본인격이기도 하다. 12음 기법의 발단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거론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반음계의 움직임은 베토벤 시대로부터 작곡 기법의 모토였던 “하나의 곡은 하나의 조성을 기본으로 구성되고 전개된다”는 불문율을 뒤흔든다. 드뷔시,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19세기 말에 활약한 수많은 작곡가들의 음악은 곡의 조성을 애매하게 해서 조성을 알 듯 모를 듯하는 한계선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그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음악을 듣는 사람은 조성을 알 수 없다. 이렇게 조성에 좌우되지 않는 음악을 무조음악이라고도 부른다.

 

무조음악인 12음 음악은 음계 대신에 작곡가가 결정한 음렬이 사용된다. 12음을 작곡가가 생각하는 임의의 순서로 나열한다. 이 ‘음렬’의 순번은 되풀이되거나 생략되거나 중복되는 일이 없다. 다섯 번째 음은 반드시 네 번째 음 다음, 여섯 번째 음 전에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음악이 단조로워지기 때문에 음렬을 변화시켜야 한다. 도 -> 솔# ->미 가 원형일 때 그대로 5도 위로 이동하면 솔 ->레#->시 가 된다. 리듬도 다르고 역행이나 반행이 조합되어 듣는 사람은 음렬의 순서를 알기 힘들다. 12음을 나열하는 조합은 4억 가지가 넘는다 한다.


화가 에곤 쉴레가 그린 쇤베르크의 초상. 쇤베르크는 12음계라는
혁신적인 음악을 작곡했다. <출처: wikipedia>

 

이러한 12음 음악을 만든 사람은 아르놀트 쇤베르크(1874~1951)이다. 빈에서 태어나서 독학으로 작곡을 공부한 그는 처음에는 후기 낭만주의 성향의 음악을 작곡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떠올릴 수 있는 교향시 [펠레아스와 멜리상드](1903)가 그 예다. 이후 1912년까지 쇤베르크의 취향은 점차 무조성으로 기울어간다. [달에 홀린 피에로]는 프랑스의 시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으로 ‘슈프레히게장’(Sprechgesang, 정해진 음정 안에서 이야기하듯 노래하는, 노래와 낭송의 중간 형식)이라는 성악 기법과 조성의 중심음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무조 기법으로 ‘밤’과 ‘피’의 이미지를 그렸다. 1921년 쇤베르크는 친구 요제프 루퍼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12음 기법을 발견했다고 한다. 쇤베르크는 루퍼에게 “나는 오늘 독일 음악의 우위를 100년동안 지속시킬 발견을 했다네”하고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여기엔 과장이 있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쇤베르크의 12음 음악은 두 제자 안톤 폰 베베른알반 베르크에게 계승되었고, 음렬음악(뮈지크 세리엘)의 형식으로 발전해 나갔다. 독일에서 공부한 세계적인 우리 작곡가 윤이상과 박영희의 작곡세계도 음렬음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새로운 장르 - 전자음악과 구체음악

1877년 에디슨의 목소리로 부르는 ‘메리는 어린 양을 가졌네Mary had a little Lamb’이 원통형 축음기에 녹음됐다. 이 최초의 녹음 이후 원통식보다는 원반형 음반이 일반화되었고 1900년경 78회전으로 재생하는 30cm판 레코드의 한쪽 면에 3분의 음악이 녹음되었는데 이를 SP라 한다. 이후 녹음의 양과 음질의 진보는 계속되었고 1948년 미국 컬럼비아사에서 최초의 LP인 밀스타인 연주, 발터 지휘 뉴욕 필의 멘델스존 협주곡 음반이 발매되었다. 자기 테이프를 이용한 테이프 리코더도 실용화, 대중화되었다.

 

전기 기술의 발전은 전자음악을 낳았다. 이 분야의 거장으로 칼하인츠 슈톡하우젠(1928~2007)을 빼놓을 수 없다. 쾰른의 서독일 방송국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근무하면서 수많은 전자음악을 만들었다. 올리비에 메시앙의 제자였던 그는 음악의 요소로 음고와 음색, 지속, 강도뿐 아니라 음의 방위성이나 공간성도 논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성학과 음향물리학, 정보이론 등을 연구하여 작곡에 응용했다.

 

이 무렵 ‘구체음악’(Concrete music)이란 개념이 등장했다. 프랑스 국영방송국의 기사였던 피에르 셰페르가 창시한 이 음악은 새소리나 증기기관차 엔진 소리, 소음이나 악기 등 구체적인 소리를 테이프에 녹음한 다음 골라서 음향기기를 이용해서 음을 변형한다든지 짜맞춰서 작곡한 음악이다. 이제는 신시사이저의 발달로 ‘샘플링’을 통해 모든 소음과 일상의 소리들에 음계를 부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20세기 음악의 지평을 넓힌 사례로 간주되었다. [철도 연습곡], [소년의 노래] 등이 그의 작품이며 에드가 바레즈크세나키스 등 작곡가들이 이 방식을 통해 작곡하기도 했다. 구체음악은 음렬음악과 전자음악 모두 관련 접점을 가지고 있었다.


전자음악 레코딩 중인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음렬음악도 발전을 계속했다. 20세기 초까지 클래식 음악의 구성 요소는 선율과 화성, 리듬을 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음렬음악에서는 이보다는 음의 높이와 길이, 세기와 음색 등 추상적인 척도를 중시했다. 여기에 12음 기법의 음렬 열거 방법을 응용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다. 전음렬주의 혹은 총렬주의를 탄생시킨 메시앙의 ‘음가와 강약의 모드’ 등이 대표작이다. 또 신시사이저의 발달은 20세기 중반 이후 월터 카를로스의 [Switched on Bach](1968) 앨범을 시작으로 대중들과 일반 음악팬들에게 전자음악의 존재감을 알렸다.

 

 

 

우연성의 음악 – 존 케이지의 실험


1952년 뉴욕의 우드스톡 공연장에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가 등장했다. 그가 초연한 작품은 존 케이지의 [4분 33초]. 그러나 피아노에 앉아 뚜껑을 연 튜더는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작품의 연주를 시작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시계만 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뚜껑을 닫고 일어나서 인사만 하고 들어갔다. 관객들은 ‘넌 내게 모욕을 줬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격노했다.


아무튼 존 케이지의 의도는 제대로 들어맞았다. 연주자가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는 4분 33초동안 우연히 들려오는 소리, 객석의 기침, 부스럭대는 소리,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 등 모든 소리들이 이 작품을 구성한다는 것이 케이지의 생각이었다. 하버드 대학에서 소리가 완벽히 차단됐다는 방향실을 방문한 뒤 그곳에서도 소리를 듣고 ‘절대적인 무음은 없다’는 확신을 얻게 된 것이 이 작품의 작곡 동기라고 알려져 있는데, 혹자는 케이지의 친구인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빈 캔버스를 전시한 미술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불교와 선에도 관심을 갖고 동양사상에 매료된 케이지의 수법을 ‘젠(Zen, 禪) 오퍼레이션’이라고도 한다.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와 음악 실험 중인 존 케이지.

미니멀리즘 작곡가 필립 글래스. <출처: wikipedia>

 

 

케이지는 우연성이나 불확실성 음악을 주제로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도형악보’로 도안된 악보도 그 기법 중 하나다. 1959년 뉴욕에서 초연된 케이지의 [폰타나 믹스]의 악보는 뒤엉킨 움직임이 있는, 곡선이 그려진 한 장의 종이와 세 장의 투명 필름으로 되어 있다. 세 장의 투명 필름에는 각각 검은 점, 격자 모양, 하나의 직선이 그려져 있었다. 연주자는 네 장을 겹쳐보면서 연주를 하는데, 도형으로 된 악보는 연주자에게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며, 필름을 겹치게 하는 방법이나 악보의 어느 부분을 사용하는가는 전적으로 연주자의 자유이다. 연주자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음악이 되는 것이다. ‘또뽑기’ 같은 악보인 셈이다. 도형 악보를 위해서 디자이너와 공동 작업을 하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케이지는 또한 1930년대 후반 현과 현 사이에 볼트나 지우개 등을 끼워서 소리를 변조시킨 ‘조작된 피아노(prepared piano)’를 고안해 이 악기를 위한 작품들을 썼다.

 

 

 

미니멀리즘과 현대인의 안식을 위한 음악


1960년대 이후부터 대두된 ‘미니멀리즘 음악’은 말 그대로 단순함을 추구하는 경향이었다. 기본을 중시하고 기교와 장식을 지양하는 미니멀리즘 음악은 반복과 지속을 그 특징으로 했다. 스티브 라이히나 테리 라일리, 필립 글래스 등의 작품들로 만나볼 수 있다. 이들 미니멀리즘은 대중음악의 테크노 장르로 이어졌다. 현대음악이 비인간적이고 디지털화된 음악뿐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폴란드의 헨릭 구레츠키, 미국의 알란 호바네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는 자연과 영성을 중요시한 작품세계로 황폐화되고 복잡해진 20세기와 21세기 현대인들에게 단비가 되어 주었다. 아시아에서도 현대음악은 현재진행형이다. 죄르지 리게티의 제자인 우리나라 작곡가 진은숙, 에드가 바레즈의 제자인 중국의 탄 둔 등이 왕성한 창작으로 기존에 서양에 가장 많이 알려진 동양 작곡가였던 일본의 다케미츠 도루의 입지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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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형 / 전 <객석> 편집장, 음악 칼럼니스트
월간 <객석> 편집장 역임, 현재 (재)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거장들의 옛 음반과 생생한 공연의 현장이 반복되는 삶이 마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TOPIC / corbis

 

 

 

 

원문보기 : http://navercast.naver.com/classical/classicabc/3710